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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Feb 03. 2022

경주, 영원히 변치 않고 고요했으면

 

설 명절이 시작되기 전, 나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극한의 피로에 툭하면 눈 주변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팔과 다리에는 계속하여 쥐가 났다.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고, 심한 두통도 동반되었다. 회사 일에 개인 출판사 업무까지 병행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욕심도 많은 일을 덜어내기는 커녕 더하기 바빴다. 한가로이 있는 내가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라, 늘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 바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적신호가 켜질 무렵, 장장 5일간의 설 연휴가 시작됐다. 작년과 달리, 비교적 길 설 연휴에 모처럼 들떠서 경주로 내려갔다. 내려간 첫날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먹고, TV를 보면서 이불과 한 몸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날려버리고 나니 슬슬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정녕 이렇게 내가 놀아도 되는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될 것만 같은 압박감에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연휴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불안한 마음에 노트북과 각종 장비들을 캐리어에 한가득 챙겨왔지만,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것들을 꺼내는 순간, 난 또 일의 늪에 빠져야만 할 테니까. 28인치 캐리어 구석에 값비싼 그 친구들을 5일 내내 묻어두었다. 


대신 정말 푹 자고, 잘 먹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원없이 먹었고, 외숙모께서 만들어 주신 각종 전도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또, 언제나 고요한 경주의 모습도 눈에 가득 담았다. 언제나 경적 소리로 가득한, 인파들로 흘러넘치는 서울과 달리 경주는 그저 고요했다. 물론, 황리단길이나 보문관광단지와 같은 유명 관광지는 서울 못지않게 북적였지만 그 외에 곳들은 한없이 조용했다.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언제나 조용하고 고요한 경주가 좋다. 황리단길의 등장으로 고요해진 경주 구 시내(시가지)를 거닐었다. 한산한 거리, 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항상 소음에 시달려 오다가 온전한 자연의 소리, 이를테면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귀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재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적게는 1번에서 많게는 3번까지도 경주에 갔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4~5개월에 겨우 1번밖에 내려가지 못했다. 워낙 자주 가지 못하니 그간 정말 아쉬웠는데, 이렇게 5일 동안 완전하게 경주를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던지.

오늘 새벽, 신경주에 도착해서 서울행 KTX를 타는 그 순간에도 아쉬웠다.
'조금 더 있다 가면 좋을 텐데, 회사만 아니었다면...'

일을 시작하고 난 뒤, 경주에 오랜 시간 살아본 적이 없다. 덕분에 경주의 내 방은 언제나 휑하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을 보면 내 마음까지 시리다. 서울 생활이 분명 편하고, 직장인으로서, 작가로서의 꿈을 펼치기에 최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난 경주가 좋다. 돌아가고 싶다. 

언제나 고요한 그곳으로. 
엄마, 아빠, 동생이 있는 그곳으로.
엄마의 다정함과 아빠의 보살핌이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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