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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Feb 16. 2022

경주 누군가의 책방에 다녀오다

지난 주말,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경주로 내려갔다.  경주로 내려간 김에 지난 설에 가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책방'에 다녀왔다. 설 연휴에 휴무를 했었던 터라,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드디어 들를 수 있어 설렘이 앞섰다. 차가 없는 탓에 엄마에게 부탁을 해, 책방 근처에 내려달라고 했다. 차에서 내려 고즈넉한 골목길을 걸어 책방으로 가는 길, 기분좋은 설렘이 나를 감쌌다. 최근에 워낙 피곤하고, 예민했던 탓에 웃을 일이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기분이 좋았고, 덕분에 오랜만에 작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멋들어진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군가의 책방'의 마스코트, 강아지 호두가 나를 반겼다. 사실 난 7살 때, 목줄이 풀려버린 큰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 그날 이후로, 이 세상의 모든 개는 내게 경계 대상이 되어버렸다. 갓 태어나 제대로 걷지도, 짖지도 못하는 개도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나이가 들면서 무서움의 농도는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개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흠칫 놀라곤 했었다. 그런데, 호두는 달랐다. 나를 보고 반갑다고 짖는데 처음으로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호두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책방으로 들어섰다. 대표님께서 워낙 집중하여 무언가를 읽고 계시길래, 조용히 인사만 드리고 들어가서 책들을 둘러봤다. 책방 초입 쪽에 위치한 매대에 얼마 전, 엄마가 대신 방문해서 입고해 주셨던 내 책 '엄마, 서울은 왜 이래?'도 잘 진열되어 있었다. 작가인 내가 내 책을 한참 들여다보는 것이 어쩐지 민망해서 잘 놓여 있는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지나쳐서 다른 책들을 살펴봤다. 

워낙 입고되어 있는 독립출판물 종류도 다양하고, 굿즈나 다이어리들도 서울 못지않게 많아서 여유를 갖고 한참을 둘러봤다. 고심 끝에 2권을 골라들고, 매대로 다가갔다. 대표님께서 계산을 하시는 동안, 목소리를 가다듬고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 쪽에 놓여있는 '엄마, 서울은 왜 이래?' 작가 한유정이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저희 어머니께서 대신 입고를 해주셨거든요. 그 뒤로 메일을 보내 주셔서, 제가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었는데 이제야 오게 됐어요. 만나서 정말 영광입니다."

나의 인사에 대표님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환대해주셨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는 연신 부럽다고 말씀드렸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책방을 운영하실 수 있는 거냐고. 나도 책방을 언젠가 꾸려나가고 싶다고. 쏟아지는 나의 질문에도 대표님께서는 당황한 기색 없이 차근차근 대답을 해주셨고, 책방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 것까지도 허락해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책방은 대표님들 닮아 평온했다. 한옥 특유의 멋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기도 했고, 앞서 말했듯 꽤 다양한 독립출판물들이 입고되어 있기도 했다. 당분간 경주에 내려갈 일이 없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고, 대표님과도 아쉽기만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번에 경주에 내려오면, 또 꼭 들러서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대표님께서는 언제든지 놀러 오시라며 나를 대문 넘어까지 배웅해 주셨다.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빠르게 걸음을 옮겨야 했을테지만, 어쩐지 진하게 남는 여운에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꼭 무언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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