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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r 07. 2022

서울로 돌아가는 새벽, 신경주역 앞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어떻게든 경주에 하루라도 더 있으려는 버릇. 금요일 퇴근 후에 곧장 KTX나 SRT를 타고 내려와 월요일 새벽에 올라가서 바로 출근을 하면, 4일 정도는 경주에 머무를 수 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온전히 경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토요일과 일요일 단 이틀에 불과하지만.

누군가는 혹시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오래 있는 거냐고 말하지만, 전혀 아니다. 아빠, 엄마, 동생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원룸에 비해 경주의 집이 훨씬 더 넓고 쾌적하고 온기가 가득하다는 것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먹지 못하고 내려와 토,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나면 솔직히 너무 피곤하다. 게다가 일어나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곧바로 신경주역으로 와서 서울역이나 수서역에 도착해 바로 출근한다면? 피로가 극에 달해 미칠 지경이다. 눈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두통도 심하다. 위염이 심해 커피를 못 마시는 나도 커피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피곤하다. 그래도 언제나 경주에 내려가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 새벽 첫 차를 탄다. 서울로 향하는.

월요일 새벽이면 아빠가 출근하는 길에 날 신경주역까지 데려다준다. 집에서 신경주역까지는 15분. 새벽이라 차가 안 막혀서 그런지 유난히 빨리 도착하는 느낌이랄까. 근처에 도착하면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 5분 정도 걸어서 신경주역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엄마,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이 제일 싫다. 돌아가면 바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게 뻔하니까. 이렇게 올라가면 최소한 1~2달은 함께 사는 여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을 보기가 힘드니까. 험난한 서울살이에 공시생인 여동생을 케어해야 하고, 언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니까.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는 데다가 진한 그리움까지 피어오를 것이 뻔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하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다. 

그래서 일부러 아주 천천히 걷는다. 짐이 무겁지 않는 날에도 무거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상관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딛는다. 경주 따위에 아무 미련도 없다는듯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이곳에 미련이 잔뜩 남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거나, 한숨을 쉬며 서서히 걸어간다. 

이윽고 역에 도착해서 플랫폼으로 올라가면 맥이 탁 풀린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냥 회사고 뭐고, 이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생각은 열 번쯤 하고 나면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승차객을 위한 다정한 안내방송이 내게는 '넌 이제 무조건 서울로 돌아가야 돼'라는 압박처럼 들려 듣기가 싫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고속철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열차의 문이 열리고 탑승을 도울 계단이 내려오면 최대한 천천히 몸을 싣는다. 느릿느릿하게 자리에 걸어가서 창밖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바로 눈을 감는다. 창밖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자꾸만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 뻔하니까. 분명 경주에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내 가슴속에는 온기가 맴돌았는데, 떠날 때는 냉기가 가득하다. 잠에 빠지지 않으면 어쩐지 계속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서, 마치 어떠한 의식처럼 에어팟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곧바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귀도 닫아버린다.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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