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세이스트 Mar 09. 2022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세상에 태어나 생을 살아가며 부모님께 항상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지내왔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왔다. 엄마, 아빠는 서울의 살인적인 월세를 이겨내지 못하는 큰딸에게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지원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각종 생필품과 밑반찬들을 내려갈 때마다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멀지 않는 날에 서른이 될 장성한 자식이 아직까지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할 때가 많다. 

한 달에 한 번. 고향 경주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난다. 볼 때마다 조금씩 흰머리가 늘어나고 살이 빠지는 엄마와 아빠를 보며 생각한다. 이제는 두 분도 오십을 훌쩍 넘었다. 100세 인생의 중간점을 지난 것이다. 슬슬 노후를 대비해야 할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 당신들의 노후를 충실히 대비해 나가도 부족한 상황에 다 큰 자식이 번번이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 나 역시 몹시 답답하다. 

최근 더욱더 열심히 저축에 매진하고 있다. 씀씀이가 컸던 나는 조금씩 지출을 줄이고 있다. 최근 독립출판에 도전하며 1인 출판사까지 시작한 터라, 수입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반대로 소비는 줄어들고 있다. 매일 가계부를 쓰며 소비 현황을 체크하고 청약저축과 적금을 통해 돈을 모으고 있다. 비록 아직 소액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불어나는 통장 잔고와 줄어드는 카드값을 보며 결심한다. 적어도 5년 안에는 부모님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설이나 추석 명절, 생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날에도 아낌없이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딸이 되겠다고. 현업에서 손을 떼고 노후 대비를 위한 새로운 일거리나 사업을 구상할 때, 힘껏 지원해 줄 수 있는 딸이 되겠다고. 부모님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셔도 된다. 모든 지원은 내가 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딸이 되어보겠다고.



부모님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려면 돈뿐만 아니라 마음도 충분히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한 것만 같다. 좀 더 자주 전화를 하고, 살갑게 인사를 건네야만 하는데, 쉽지 않다. "사랑한다, 존경한다."는 말을 쓸 수는 있지만 왜 이렇게 입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않은 것인지. 늘 반성하지만,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애정표현과 잦은 안부 인사가 부모님께 돈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하루를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지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집에 전화할 겨를이 없는 여동생,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는 남동생을 대신하여 나라도 많은 표현을 해드리면 좋을 텐데. 낯간지러운 말은 잘 못하는 성격 탓에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면 입이 곧바로 얼어붙는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언젠가 후회하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노력해 봐야지. "사랑한다. 존경한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도록. 온몸에 닭살이 돋더라도 그래도 시도해 봐야지. 거침없는 애정 표현을. 그래서 부모님이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서울로 돌아가는 새벽, 신경주역 앞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