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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r 14. 2022

어르신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 세상은 아닐까.

이젠 놀랍지도 않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코로나19 확진 소식을 전해주어도. 서울시 인구의 절반이 코로나19에 걸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 웬일인지 소식이 뜸한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면 거의 대부분 코로나로 인해 자가격리중이었다. 이젠 안 걸린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힘든 상황이다. 나도 이미 6번이나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확진 판정을 받은 적이 없었다. 딱히 유난히 조심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나는 잘 피해가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나도 의심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이 붓고, 열이 났다. 무언가 목이 조여오는 느낌, 그리고 두통에 시달렸다. 콧물도 줄줄 흘렀다. 결국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오늘 강남구 보건소로 7번째 PCR검사를 받으러 갔다. 과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보건소 주차장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두 줄이 선명하게 찍힌 자가키트 혹은 가족 중 확진자가 있어 문자를 받은 사람들의 대기 장소로 쓰이게 됐으니까.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사람이 많은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거의 대부분 6~70대 어르신분들인 것도 내심 놀랐다. 젊은 내게도 코로나는 몹시 치명적인 질환임이 틀림없는데, 하물며 어르신들에게는 어떻겠는가. 그래서일까, 나란히 줄을 서서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유난히 더 어두워 보였다. 고운 개량 한복을 입고 페이스 쉴드까지 야무지게 착용하신 어떤 백발의 할머니께서는 계속 혼자 중얼거리시며 기도를 하셨다. 나도 에어팟을 끼고 있었던 탓에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제발 코로나 확진이 아니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곧 비가 내릴 것만 같은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서서히 발이 붓고, 다리가 저려올 무렵 임시 천막으로 들어가 전자 문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주 했던 절차지만, 이번에는 증상이 분명했던 탓에 유난히 더 긴장하면서 하나씩 빈칸들을 채워나갔다. 그러다 문득 과연 전자 문진 시스템을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도 무탈히 잘 하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어르신들은 또 워낙 스마트폰을 잘 하셔서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바로 옆에서 어떤 할아버지께서 보건소 직원에게 크게 화를 내시는 것을 목도했다. 언성이 점점 더 높아지시길래,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잠깐 에어팟을 빼고 귀를 열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동거 중인 딸이 확진 판정을 받아 검사를 받으시러 온 것이었다. 입구에서 직원이 전자 문진을 하라며, QR코드가 부착된 책상으로 가라고 했단다. 일단 앉기는 앉았는데, 이거 뭐 어떻게 하는지도 설명도 안 해주고, 계속해서 사람들은 밀려오니 꽤 당황하셨나 보다. 직원의 도움이 간절한데, 아무리 불러도 직원들이 자기쪽으로 안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께서는 20분이 넘도록 자리에 그저 앉아만 계셨나 보다. 그런데, 직원이 갑자기 "할아버지 빨리 문진 안 하시고 뭐 하세요? 뒤에 사람들 밀리잖아요!"라고 하니 화가 잔뜩 나신 것. 

보건소 직원들의 상황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바쁘겠는가. 하나같이 다들 지쳐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분노에 대한 대응이 너무 아쉬웠다. "제가 일일이 할아버지께서 모르는 부분까지 어떻게 챙겨드려요"라고 같이 언성을 높이는 점은 보기에 불편했다. 이 문제는 그 할아버지께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앞, 뒤, 좌, 우로 앉아계시는 7~80대 어르신분들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도대체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이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종이에다가 적을 수는 없나요? 노인네들은 화면 보기도 힘든데 이거 일일이 입력하는 것도 어렵다니까요. 우린 젊은 사람들이랑은 달라요."

결국 원성이 자자해지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나와 어르신들을 돕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참을 기다렸던 그분들께서는 무사히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 역시 검사를 받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머리가 계속 아파 버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비 냄새가 묘하게 섞인 바람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의 일이 떠올랐다.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를 위해 도입된 전자 문진 시스템 앞에 고개를 기웃거리나 한숨을 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계시던 어르신들이. 그러고 보니 최근 식당에서도 그런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예 무조건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곳도 전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동네 프랜차이즈 분식집에도 마찬가지였다. 라볶이가 무척 먹고 싶어 들른 동네 프랜차이즈 분식집에서 포장을 요청하고 대기하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어떤 할머니께서 들어오시더니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셨다. 손을 화면에 가져다 놓다가 다시 어딘가 심각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셨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셨다. 상황을 눈치챈 내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님, 어떤 음식이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대신해 드릴게요~"
"아이고 아가씨 고마워요. 내가 이런 걸 할 줄을 몰라서..."
"별말씀을요. 젊은 저도 이거 쓰는 게 쉽지 않은데, 

할머님께서는 오죽하시겠어요. 제가 금방 해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할머니 대신 김밥을 주문해 드리고, 기다리는 동안 잠깐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께서는 얼마 전, 친구분과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는데 무조건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하라고 해서 결국 거길 나오셨다고 한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곳들이 많아져, 근심이 많다고 하셨다. 점점 더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 같은, 낙오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참으로 속상하시다고. 그렇게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할머니의 넋두리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음식점도, 공공기관도, 보건소마저도. 점점 어르신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는 세상일지 모르나, 어르신분들에게는 그 반대인 상황. 키오스크 앞에서, 모든 자동 시스템 앞에서 망설이고, 또 주저하고, 헤매는 어르신분들을 위한 방책도 부디 빠르게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오직 젊은이들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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