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세이스트 Mar 18. 2022

수원 독립서점 「오평」에 다녀오다

지난 1월 중순쯤, 내 생에 첫 독립출판물을 들고 '책보부상'이라는 북페어에 참여했다. 북페어에 참여하며,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이 바로 뒷자리에 앉아계셨던 오평의 오수민 대표님이시다. 공간이 협소하여 개인별 부스당 간격이 좁아, 앞뒤로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님께서는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셨었다. 게다가 먼저 내 책을 구입해 주시기도 하고,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온 나를 위해 달달한 간식을 선물해 주시기도 하셨다.

당시 매력적인 향의 인센스부터, 직접 제작하신 책갈피와 엽서 등 정말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고 계셨었다. 하지만 처음 참여하는 북페어였고, 집에서부터 캐리어에 넣어 낑낑 들고 온 내 책들을 한 권이라도 많이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여유롭게 매대를 구경하지 못했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진한 아쉬움이 남아 대표님께 '제가 꼭 한 번 수원으로 놀러 갈게요'라고 말씀드렸었다. 그 뒤, 여러 일정들이 계속 생겨나 수원까지 넘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두 달이 지나서야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오평 방문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청명역 근처에 사는 고모와 함께였다. 나처럼, 아니 오히려 나보다 책에 관심이 많은 고모는 울산에서 수원으로 이사 오신 뒤에 근처 책방에서 정기적인 독서 모임에도 참여하시는등 계속해서 독서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계셨었다. 전날, 고모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평'에 들러 대표님께 인사도 드리고 책도 구입하겠다고 말씀드리니 고모께서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평소 오평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너무 매력적인 동네 책방인듯 하여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꼭 가보겠노라고 생각하셨단다.
 
"오 그래요? 그럼 당장 같이 가요 고모!"


그렇게 우리는 북메이트가 되어 오평에 도착했다. 북페어 이후, 오랜만에 뵙게 된 수민 대표님께서는 우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인스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책의 종류가 다양하고 넓었다. 또, 다른 책방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블랙 컨셉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방 곳곳에 대표님의 독보적인 센스가 듬뿍 묻어났다. 직접 작성하신듯한 캘리그라피도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경주에 내려가 책방을 차리는 것이 목표인 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가 필수라고 생각하여 평소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책방을 많이 방문해 보는 편이다. 오평은 내가 방문했던 책방 중에서 단언컨대 관리가 가장 잘 되고 있었다. 입고된 책의 종류가 규모에 비해 다채로웠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굿즈 역시 다양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엽서와 책갈피 그리고 인센스 스틱과 오직 오평에서만 볼 수 있는 라이터까지.

아! 동전 지갑도 판매 중이었다. 오평의 인스타 계정을 보고 계속 사고 싶었던 제품이었기에 냉큼 바로 품에 안았다. 가방 속에서 굴러다니는 동전을 넣는 것 외에도 반지를 비롯해 다양한 악세사리들을 넣어두기에도 안성맞춤일 것이라는 생각에 고모 것도 선물로 함께 구입했다. (역시나 고모는 너무 좋아하셨다.)


고모와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오평 내부 곳곳을 둘러봤다. 놓여있는 책들도 꼼꼼하게 살펴봤다. 과연 대표님께서 센스가 있으셔서 그런지, 평판이 좋고 신선한 시도라고 칭찬을 받는 독립출판물들이 많이 입고되어 있었다.

또, 한편에는 기성출판물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난 그중에서 그동안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던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골라들었다. 그리고 책을 사랑하시는 고모를 위해서 어느 유튜버가 흥미진진한 소설이라 아낌없이 찬사를 퍼부었던 '대불호텔의 유령'을 챙겼다. 책 구경에 열중하고 계신 고모를 피해 살짝 대표님께 다가가 결제를 부탁드렸다. 감사하게도 나와 고모를 위한 책갈피와 엽서까지 챙겨주셨다. 어쩜 그렇게 섬세하고, 다정하신지!


이미 고모 집에서 거하게 커피를 마시고 온 상황이었지만, 오평까지 왔는데 음료를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따뜻한 차와 레몬에이드를 주문했는데, 강남 유명 카페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고모도 나도 연신 탄복하며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마시기 아까울 정도로 예뻐서, 둘 다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맛도 으뜸이었다. 특히 특히 내가 주문한 레몬에이드는 여지껏 내가 숱한 카페에 들러 마셨던 그 어떤 것보다 최고였다. 신맛이 과하지 않았고, 탄산과 레몬즙이 적절한 입안에서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다 마시고 나서도 입안에 남는 것 없이 아주 깔끔했다. 여느 카페의 레몬에이드와 달리.



기대 이상의 맛과 퀄리티의 음료를 즐기며, 고모와 난 한참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도 고모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책'이라는 공통사가 생기니 대화의 스펙트럼은 한없이 넓어졌다.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고모와 몰입하여 말을 주고받던 중, 대표님께서 갑자기 "혹시 배는 안 고프세요?"라고 물어오셨다.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온 터라, 크게 배가 고프지는 않다고 답했다. "대표님께서는 그럼 저희가 치즈케이크가 제일 유명한데, 맛이라도 한 번 보실래요?"라고 발랄하게 말씀하시며, 엄청난 비주얼의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내어오셨다. 차마 먹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니, 여기 대표님께서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뭘까....책도 책이지만, 디저트까지 완벽하네...'



맛도 엄청났다. 케이크 위에 블루베리까지 올려 입안에 넣으니 가히 환상적이었다. 동시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평 대표님처럼 이 정도 다재다능함은 갖춰야 서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난 디자인 감각, 디저트 만드는 재주, 누군가에게 과감하게 책을 추천하는 자신감, 공간을 구성하는 센스라고는 하나도 없는데...그저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 그거 딱 한 가지뿐인데, 이런 내가 과연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는 책방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여기 이 오평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책방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책방의 주인이 되겠다.'라는 원대한 꿈은 있지만. 아직 나는 많은 배움과 준비가 필요한듯하다. 수민 대표님의 공간인 '오평' 둘러보고, 즐기며 더더욱 절실히 깨닫게되었다. 수인분당선을 이용하면 내가 사는 강남에서  1시간이면 도착할  있으니 앞으로는 자주 오평에 들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입고하셨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대표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시는 메뉴들도 하나씩  먹어봐야겠다. 카페인에 취약해 커피를  마시지만, 그래도 '오평라떼'  먹어봐야지라고 홀로 생각하 고모와 오평의 문을 나섰다.

ps. 토요일 , 갑작스럽게 방문한 저희를 환대해 주신 수민 대표님, 진심으로 감사해요!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서점 <오평>서도
 '엄마, 서울은  이래?' 만나보실  있습니다.

오평에 들르시게 된다면,
'엄마, 서울은  이래?' 함께 읽어봐 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결국 나도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