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서 도망친 단어, 엄마
에세이 글쓰기 모임의 첫 번째 주제는 ‘일기장에서 도망친 단어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내 일기장에서 도망친 단어들 중에서 내가 첫 번째로 잡아온 단어는 ‘엄마’였다. 나의 엄마 경자 씨. 그녀는 내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이다. 나는 아직도 그 숙제를 풀지 못해 끙끙대고 있다. 그리고 엄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파란 바람에 흔들리는 맑은 풍경 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 없이 그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학교가 끝나고 사거리에 있는 제과점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아직도 그 빵집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래삐또르 제과점. 빵집문을 열자 고소하고 달달한 빵냄새가 풍겨왔다.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투명한 종소리가 울렸다. 빵집에서는 피자도 팔고 있었는데, 피자 굽는 냄새가 아주 근사했다.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어떤 맛일까 내가 아는 모든 맛을 떠올리며 피자의 맛을 상상해 보았다. 그런 상상들에 지쳐갈 때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처음엔 곧 오실 거야 했지만,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내 동생은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빵집 사장님도 우리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언제든지 전화를 할 수 있지만 당시엔 가게의 전화 말고는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우리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집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서울 하늘 아래 집이 없었다. 학교 이외에는 가본 적이 없는 낯선 동네에서 우리는 오갈 때 없는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는 꼭 서울로 보내야 한다며 엄마는 고집을 피웠다. 신림동 산동네에는 무수히 많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하지만 그중 작은 방 하나조차도 우리 집이 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한동안 학교를 가기 위해 강화도 할머니집에서 신림동까지 매일 먼 거리를 오가야 했다. 새벽에 별을 보며 집을 나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나와도 길이 막혀 지각하기 일쑤였고 나는 자주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나의 첫 공식적인 거짓말이었다. 처음 한두 번은 엄마가 직접 선생님에게 설명해 주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말없이 떨구고 사라졌다. 모두가 교실로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교문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종종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꿈을 꾸었다. 굳게 닫힌 그 교문 앞에 서 있는 꿈을. 꿈속에서는 아무리 소리쳐도 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빵집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흠칫 놀랐다. 오월 같은 투명한 종소리가 울린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사장님의 인사 소리, 손님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목소리, 어린아이가 오물오물 빵을 먹는 소리, 빵을 포장하는 종업원 언니의 부스럭 소리 등 아주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내 심장으로 모여들었다. ‘쿵쿵! 쿵쿵쿵!’ 마치 누가 내 심장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처럼 가슴이 마구 뛰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 두려움에 떨며 나는 동생 손을 꼭 잡고 꼬박 5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엄마가 왔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가 어떤 사정이었는지 설명해 주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퀭한 엄마의 얼굴에 드리운 시커먼 먹구름이 무서워 나도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의연하게 피자를 주문했다. 태어나 처음 먹는 피자였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상상했던 맛과 달리 처음 맛본 피자의 맛은 그리 근사하지 않았다. 마치 질긴 고무 타이어를 씹는 것처럼 잘 삼켜지질 않았다. 그 질기고도 불편했던 피자의 맛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늘 그때 그 일이 떠오르곤 했다.
엄마는 그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엄마였다고. 어떻게 엄마가 어린 딸에게 그럴 수 있냐고. 한 번도 묻지 못한 말들이 내 안에서 무성하게 자라서 비밀의 숲이 되었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면 그날의 내가 떠올랐다. 5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끝까지 울지 않았던 그날의 내가. 한동안 나는 아직도 엄마를 기다리며 원망하던 소녀였다. 엄마를 생각하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날의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두 딸의 엄마가 되어 그날의 기억을 돌이켜보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빵집 문을 열기 전의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문을 열기 전 숨을 고르고 눈물을 닦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그날의 엄마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그 고단함을 버텨냈을까? 어쩌면 그날 엄마는 그 문이 아니라 다른 문을 열고 싶었을까?
엄마와 내가, 우리가 30년 만에 서로를 본다. 엄마와 내가 서로를 껴안고 이제야 펑펑 운다.
이 이야기를 쓴 게 두 번째 수업이었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엉엉 울고 싶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비밀의 숲에서 꺼내었다. 동생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날의 이야기쯤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이만큼 지났으니 두려움도, 원망도 옅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안의 열세 살 소녀는 아직도 래삐또르 제과점에 앉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내가 그날의 열세 살 소녀를 가만히 안아준다. 이제 울어도 괜찮다고.
어린 소녀는 이제야 울음보를 터뜨린다.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