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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Mar 23. 2023

곱디고울 필요는 없다.



괜찮을까? 아까 많이 울던데.
 oo 이도 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날은 갑작스러운 몸살 기운에 온몸이 으슬으슬하고 기력이 없어 집에 있던 감기약을 꺼냈다. 희한하게 얼마 전부터 알약 공포증이라고 해야 할까? 크기가 큰 알약은 먹기 전부터 겁이 나고 목 넘김도 수월치 않아 약 먹을 때마다 곤욕이다. 평소 나라면 한 알씩 나눠 먹겠지만 그날은 빨리 약을 먹고 당장 자리에 눕고만 싶었다.

알약 두 알을 한 번에 털어 넣고 고개를 힘껏 뒤로 젖혀대며 요란하게 물을 마셨다.

120ml로 고정된 물을 다섯 컵 마셨으니 알약 두 알에 물 600ml가 필요했다. 물배는 왜 그리 빨리 차는지 걸을 때마다 배에서 물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바로 소파로 직행해 담요를 덮고 누웠다. 아플 때 찾아오는 적막은 통증과 하나 되어 아픔의 강도를 배로 만들 때가 많다.

고요한 집안에 나는 소리라곤 내 앓는 소리뿐이었다

난 잠들기 전 전조 현상이 있다. 지금 상황과 아무 상관 없는 예전의 나를 자주 만난다.

예를 들어 중학교 매점에서 내가 좋아하던 피카츄 돈가스를 먹고 있거나 스무 살 알바 하던 시절로 돌아가 옷을 개고 있다. 그날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랜 친구와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잠이 스르르 들려고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인들이 제발 좀 바꿔라 바꿔라 애원하던 그 벨 소리였다.      

‘띵띠리 띵띵 띵띵 띵띵띵 / 띵띠디 띵띠리 띵띵 띵띵 띵띵띵’ (설명을 잘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폰 기본 전화벨 소리이다.)

딸아이 유치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시에 하원하는 딸아이의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긴 애매하고 불길한 시간인 건 틀림없었다.     


“여보세요?”

“네. 어머니 유치원입니다.”

“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oo 이가 바깥 놀이 나갔다가 뛰어오는 친구랑 부딪혀서 이마가 좀 찢어졌어요.”

“네?”

“많이 놀라셨죠? 지금 병원으로 출발할 건데 혹시 같이 가실 수 있나요?”

“아이는 괜찮나요? 제가 운전을 못해서 바로 택시 타고 갈게요. 어느 병원이죠?”

“아니면 유치원에서 가는 방향이라 어머니를 모시고 갈까요? 아이가 많이 울어서요.”

“알겠습니다. 바로 나갈게요.”     


솔직히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감사히도 딸아이는 그때까지 피를 볼 만큼 다친 적이 없었고 입원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아이 이마가 찢어졌다니.

정신없이 보이는 대로 옷을 걸쳐 입고 눈앞에 걸린 남편 외투를 걸치고 뛰쳐나갔다.

많이 놀랐을 아이에게 먹일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카드를 못 꺼낼 만큼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물을 사서 나오는데 내 앞에 검은 승용차가 섰다.

조수석에 이마에 거즈를 붙인 딸아이가 앉아 있었다. 난 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놀라서 울기라도 하면 아이가 더 불안해할 것만 같았다.

아이를 안고 뒷좌석으로 갔다. 나를 보자마자 딸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고 난 딸아이를 조심스레 안았다. 조금 진정된 아이에게 떨리는 손으로 사 온 물을 먹였다.      


“oo 괜찮아? 많이 놀랐지? 엄마 있으니깐 이제 괜찮아.”

“나 진짜 아팠어. 피가 많이 나서 무서워서 울었어.”     


가만 보니 아이의 하얀 외투에 핏자국이 보였다.      


“어떻게 다쳤어? oo 이도 뛰어가다가 부딪혔어?”     


내 말에 운전석에 있던 원감님이 상황 설명을 하는 듯했지만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 나가자마자 부딪혔어. 나도 뛰고 친구도 뛰고 박을 때 소리가 엄청 컸어.”

“그랬구나. 이제 병원 가니깐 괜찮아. 안 아프게 잘 치료하고 집에 가서 엄마랑 oo 이가 좋아하는 인형 놀이하자. 알았지?”

“좋아. 엄마. oo 이는 (부딪힌 친구) 괜찮을까? 아까 많이 울던데.

 oo 이도 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엄마도 알아. 바깥 놀이가 너무 신나서 둘 다 앞을 잘 못 봤나 봐. 그치?”

“맞아. 나 아파서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     


딸아이와 부딪힌 남자아이는 불행 중 다행인지 찢어지지 않고 가벼운 타박상이라 했다.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가 심성이 고운 아이로 성장해 주길 바랐지만 이 정도로 곱디고울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이마가 찢어졌는데 친구를 걱정하다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맘 같아선 유치원 측에 강력히 항의도 하고 cctv를 찾아달라 소리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 순간 난 그러질 못했다. 아이 앞에서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원감님은 내게 몇 번이나 죄송하다 하셨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왜냐면 좀 전에 전화 온 담임 선생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말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원감님이 나와의 통화를 끝마쳤다.     




내가 이러는 데는 얼마 전 그 일이 한몫한 것이 틀림없었다. 내 언니는 유치원 교사이다.

연차가 쌓인 베테랑 교사. 언니는 육아로 3년을 쉬다 그 해 복직했다.

며칠 전 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언니 반 아이 이마가 찢어졌다고 했다. 심지어 언니 바로 앞에 아이가 있었는데 잠깐 못 본 사이 문에 부딪혀 찢어졌다나. 언닌 깊은 자책에 빠져 얼마나 울었는지 진이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언니가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어머니가 간호사신데 아이 이마가 찢어졌다고 연락드리니 병원을 지정해 주시며 치료가 끝나면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나. 유치원에 오신 어머니는 오히려 우는 언닐 위로해 주시고 돌아가셨다나. 난 그때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언니 탓을 하지 않은 일면식도 없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너무 감사했다. 언니는 그 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터라 몇 날 며칠 전활 걸어 언니 상태를 살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내 아이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감사하게 느낀 그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리고 자책하던 언니가 생각났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모든 상황이 처음인지라 어떤 절차로 봉합 수술이 이뤄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 나이로 보아 수면 마취는 하겠지라고 생각할 때 연세 지긋하신 의사분이 들어오시더니 간호사 두 분에게 다짜고짜 누워 있는 아이를 꽉 잡으라고만 하셨다.

원감님과 나를 포함해 어른 넷이 다섯 살 아이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잡은 후에야 수술에 들어갔다. 내 예상과 달리 부분 마취로 수술이 이뤄졌다. 거즈를 떼 낸 아이 상처는 처참했다.

근육이 다 찢어지고 뼈가 보일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그렇게 딸아이 얼굴을 근육을 포함해 세 겹으로 열 바늘을 꿰맸다. 아이는 고통에 발버둥을 치다 이내 포기한 듯 흐느끼기만 했다. 너덜대는 살점을 잘라내는 아픔을 참고 견뎌준 아이가 너무 고맙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내 심장을 저리게 했다.



아이 소식에 많이 놀란 남편은 그길로 퇴근했고 잠든 아이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내게 말했다.     


“안 일어났으면 참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 누굴 탓하고 원망하는 감정 소모는 하지 말자. 그럴 겨를이 어딨어. 지금은 oo 이만 생각하자. 많이 놀랐을 거야. 아이가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우리가 돌봐 줘야지.”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남편다웠다. 나도 남편 말대로 누굴 탓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으므로 아이 앞에서 어느 누굴 흉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 후 아이는 일 년 가까이 상처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 시간 가야 하는 병원을 매주 통원하며 치료에 전념했다. 상처가 깊어 치료의 강도는 셌고 괴로워하던 아이와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가 점차 지쳐갈 때쯤 딸아이와 부딪힌 그 아이의 엄마를 유치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처음 그 엄마가 꺼낸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왜 찢어졌어요? 애들끼리 부딪혔는데 어떻게 그렇게 찢어지지?”     


뭐라고?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생각할 때      


“치료비는 유치원에서 주나요?”     


라고 말하는 그 엄마에게 그런 건 걱정 마라 말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치료 잘 받으세요~.”


라고 말하는 그 엄마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너무도 오랜만에 사람이 미운 순간을 경험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이렇게 다쳤는데 상대방 엄마는 전화 한 통 없느냐 말했지만 그때마다 난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뭘.”     


이라고 했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나불댔던 내 주둥이를 비틀어 짜고 싶었다.




여전히 남편과 난 딸아이 앞에서 누굴 험담하지 않는다. 친구와 싸워 속상하다고 우는 딸아이에게 그 친구는~을 시작으로 딸아이가 전혀 공감 못 하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때도 많다.

혹시 내 입에서 태어난 말이 내 아이의 마음에 부정적으로 살아남게 될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나이 들어 무슨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진 것처럼.

미움의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본연의 나인데 날 부정하듯 내 감정도 부정하고 사는 건 아닌지. 적당히 감정을 소모하며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인데 요즘같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에게 예전 우리 엄마가 하신 말씀처럼 무조건 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내 아이를 위한 게 맞는지.

다시 일어나면 안 될 일이지만 만약 다시 이런 일이 우리 아이에게 일어난다면

그때의 내 아이는 예전처럼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걱정하는 아이가 아닌 자신이 우선인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러기엔 분명 나부터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기그렇게 심성이 곱디고울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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