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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Mar 31. 2023

엄마 내 상상력을 나눠줄게.


엄마 안 보고 그리는 게 어려워?
그럼 내 상상력을 나눠줄게.



“엄마 캐치티니핑 시즌 3 나와서 새로 나온 티니핑들 그려줄 수 있어?”     


시즌 2까지 딸아이에게 그려준 티니핑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데 시즌 3 라니. 참으로 절망적이다.

내 손목은 또 티니핑 덕에 너덜너덜 해지겠지. 엄마들 사이에 캐치 티니핑은 파산핑이라 불릴 만큼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어른인 내가 봐도 캐릭터들의 개성이 하나같이 짙고 생김새는 귀엽고 앙증맞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소장 욕구가 샘솟겠는가. 다만 깨물어 주고 싶은 티니핑의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가격이 사악 그 자체이다. 다행히 일곱 살에 접어든 딸아이의 피규어 욕심이 조금씩 잦아들어 이번 시즌엔 피규어를 다 여섯 개 정도 샀으니 이 정도면 선방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산 티니핑 피규어를 모두 합치면 서른 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거기에 말하는 피규어, 하우스, 마카롱 가게, 워터파크, 마차, 병원, 놀이동산, 그리고 가장 최근에 산 피규어를 보관할 수 있는 가방까지 다 합치면 그 금액은 어마어마하다. 내 기준 좋은 겨울 코트 두 벌은 장만할 수 있는 금액이다.

아이들 장난감이 이렇게 비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나  비싼  없는 요즘이다.




딸아이가 갖고 싶다는 피규어를 전부 사줄 순 없는 노릇이니 생각 끝에 찾아낸 방안이 바로 종이 인형이었다. 다행히 딸아이는 내가 그린 종이 인형을 맘에 들어 했다. 난 어릴 적부터 보고 그리는 건 꽤 자신 있었다. 직접 보고 그리는 풍경화나 인물화는 예외이니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베껴 그리기라고 해야 할까.

초등학교 다닐 적엔 반 친구들에게 그 당시 유행하던 만화 캐릭터를 자주 그려줬던 기억이 난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비단 티니핑 뿐이겠는가. 캐치 티니핑을 거쳐 포켓몬스터에 최근엔 산리오 친구들까지 아이가 좋아하는 건 안 그려본 게 없다.      


“엄마 티니핑 놀이하는데 공주 한 명이 필요해. 공주 좀 그려줄래?”     


갑자기 익숙한 캐릭터가 아닌 공주라니. 딸아이는 내 그림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엄마가 공주 검색 해보고 그중에서 젤 예쁜 공주로 그려줄까?”

“아니. 그냥 엄마가 그려주면 안 돼? 드레스도 엄청 화려하게. 알았지?”

“그럼 드레스는 무슨 색으로 할까? 머리 스타일은? 눈은 윙크 아님 두 눈다 반짝반짝하게 그려?”

“나도 잘 몰라 그건 생각 안 해봤어. 엄마가 알아서 그려줘.”


알아서라니. 그림에 있어서 알아서는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리는 공주는 한창 공주를 신나게 그려댔던 초등학교 저학년에 머물러 있다. 봉긋한 퍼프소매와 풍성한 드레스, 긴 생머리에 금빛 왕관을 한 너무 국한된 그림이다. 내게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보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면 내 그림 실력은 정말이지 형편없다. 가끔 내 그림을 받아 든 딸아이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는 불평을 늘어놓진 않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이 공주는 어때? 좀 이상한가?”

“난 더 예뻤으면 좋겠는데.”

“더 예쁘게? 엄마는 좀 어렵네.”

“엄마 안 보고 그리는 게 어려워? 그럼 내 상상력을 나눠줄게.”

“네 상상력을 나눠 준다고? 그래도 되겠어?”

“응. 가족이니깐 괜찮아. 내가 내 상상력을 엄마한테 보낼게. 받아.”     


딸아이는 눈은 감고 두 손을 머리 위로 가져가더니 상상력을 담아 내 머리에 전해 주었다.      


“엄마 내 상상력 받았어?”

“응. 잘 받았어. 고마워. 근데 상상력을 쓰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아."

"그래? 바로 쓸 수 없나? 그럼 내가 기다려줄게."   


나도 딸아이에게 뭐든 다 줄 수 있어도 상상력을 준다는 건 한 번도 생각 해보지 못한 터라 아이의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이후 딸아이가 요청하는 그림이 있을 적엔 딸아이 몰래 슬쩍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딸아이에게 받은 상상력을 조금이나마 증명해 내는 일이라 속인다는 생각은 말기로 했다. 슬쩍 스치며 보는 거니 내 상상력도 어느 정도 가미된 그림이 틀림없기에. 그러고 얼마 후 딸아이는 내게 호기심을 나눠줬다.

모든 만물을 건성으로만 보는 엄마가 안타까웠나 보다. 딸아이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나눠 가진 난 별 보다 반짝이는 아이 눈으로 보는 세상을 함께 보려 노력 중이다. 나도 딸아이에게 사랑과 지혜를 나눠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길 바란다. 아이 말대로 우린 가족이기에 서로 부족한 부분을 뭐든 나눠 가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염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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