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돌려 놓는다는 것
학교폭력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 올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글로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이 가해자인 기상캐스터 연진을 만나 그의 남편인 하도영의 친절(자신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온 연진이와 다르게 구두를 현관에 벗어두고 들어옴)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더 이상의 과거 폭로를 멈추겠다고 하는 장면이다.
그토록 인생 내내 연진에게 복수를 꿈꾸던 동은은 연진의 남편 하도영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신발을 벗는 그 행위에 연진에게 자신의 복수가 멈출 수도 있음을 알린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꺾을만큼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그런 예의를 의미하는구나 싶었다.
새삼 남편이 생각났다.
우리 남편은 우리 부모님이나 혹은 내가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가 나갈 일이 있으면 먼저 현관에 가서 그 신발을 편히 신도록 신발 앞부분이 현관을 향하도록 돌려놓는다.
처음에는 낯간지럽기도 하고 가끔 돌쇠라고 부르긴하지만 진짜 돌쇠도 아닌데 이런것까지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긴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남편의 그런 행동을 보며 사람의 가장 낮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발에 들어가는 신발을, 그것도 무릎을 구부려야 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며 이거야 말로 상대방에 대한 극진한 예의가 아닌가 싶었다.
비싼 말로 휘감는 칭찬이 아닌
어떠한 연락이나 안부가 아닌
신발을 돌려놓는 이 행위가 진짜 예의라는 것을 난 그제서야 이해하고 부담스럽지 않아졌다.
작년에 1달 정도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그 중 수업을 참 잘하시는 강사분이 계셨다.
저렴한 학원비에 은근히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학생들 자세도 잘 봐주시고 또 자세 설명도 자세한 것이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강사 같았다.
그 강사분께서도 수업이 끝나면 회원들의 슬리퍼를 앞으로 향하도록 돌려놓는 습관이 있으시더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강사가 그런 것은 아니니 특별해보이긴 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하는 것.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아직 오지 않은 상대방의 밥이 식을까봐
밥뚜껑을 덮어두고
딸기를 닦아 내어오기 전에 상한 부분을 일일이 도려내는 것처럼
게장의 등껍데기를 열어 먹기 어려운 가재 부분을 반으로 자르는 수고를 더 해 먹기 좋게 내어주듯이
볼 줄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 구석구석 베어든 따뜻함을 닮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