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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Oct 18. 2016

소방서의 회색늑대

사진, 사람, 사람 #4. 소방서의 회색늑대

기가 멕힙니다.

소방서 식당 옆 지하 창고.

그의 아코디언 연주(시시한 교회음악 몇 개와 아기가 섬 그늘에 등)가

끝나고 내뱉어야 하는 대사.

최대한 능글맞게 말하는 것이 노하우다.


안다. 나도 알고 그도 안다.

이것은 우스꽝스러운 연극이다.

나와 그가 서로 동의한 우스운 연극이다.


정해진 배역만큼만 행하는 것이 이 관계의 본질이니까.

그럼에도 이 연기는 억지스러운 것은 아니다.

배역에 충실할 때 우리는 서로 행복해질 수 있었다.


"넌 내 전문 사진사니까, 나만 멋지게 찍어봐."

"가족들한테 좀 보여줘야겠다. 아빠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돈 버는지."


사실 그가 고생하는 건 그때 처음 봤다.

1년가량 봐왔지만 그때 처음 봤다. 그마저 반나절이 지났을 때는 힘이 다했다.

아, 우리 주임님... 회색 늑대...



우악스러운 부장이 "얘들 군기가 빠져 갖고 말야.."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통찰을 내뱉을 때

"이렇게 말하는 이 친구는 방위 출신이여."

 감칠맛 나는 한마디를 더하곤 했다.


주임(간부 계급)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승진이 늦었다. 욕심은 없었다.

소방서의 유물 사다리차를 몰 때는 늘 긴장했다.

부족함에서 권위를 빼면 귀여움이 된다.

이상한 공식이지만 분명 실재했다.


by ryong, 2015, Canon750D, 공장화재현장에서 주임님.


그가 승진하고 나도 상방(소방서의 상병) 계급을 달았다.


같이 승진했습니다. 주임님.

"이게 어떻게 같냐 임마."

"나는 임마 소방의 역사여."

알고 있습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커피 드시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물 많이.


이제 볼 일은 없겠죠. 알고 있습니다.

연극은 끝이 났으니까요.

연극은 짧고 끝이 나니까, 그래서 좋아요.


이건 가벼운 희극이었고

대단한 얘기는 아니었고

그 뒤에 배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대 뒤 배우 모습은 비밀이어야 하는 불문율.


회색빛 머리, 회색 눈동자. 늑대를 연상케 하는 인상.

그 후의 모습이 궁금하지는 않다.

대충은 아니까. 회색빛 늑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꼭 그렇게 되길.


by ryong, 2015, canon 750D


아, 연극이 끝난 뒤의 이야기는 관객의 몫이다.

여운을 즐기고 시시한 상상을 해보는 특권.

우리가 둘 다 배우였다면, 안타깝게도 관객은 없었다.

그러니까 뒤의 이야기는 없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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