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사람, 사람 #5. 현장, 소방관, 그리고 나
2015년 10월, 소방서에서 1년 동안 의무소방원(대체복무)으로 근무하고 새로이 개관하는 안전체험관으로 전입을 앞둔 상태였다. 야간 근무 동안 10건이 넘는 구급 출동을 나가야 하고 비번 때도 화재 출동에 투입되어야 하는 근무 여건에 지쳐 있었다. 현장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생긴 것에 숨통이 트였다.
소방서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소방이라는 조직도 여느 조직처럼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때로 비겁해지기도 하고 호의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정말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 덕분에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옆에 있는 이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소방서 생활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기란 힘들었다. 자조적으로 관노비라 부르며 지냈다. 누군가 배부른 소리라 한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겠나. 개인의 감상이 어떠하든 할 일만 하면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간다. 현장은 늘 비일상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조차 성실히 흘러가야 하는 하루에 불과했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고 야간 비번이었기에 배정받은 차량에 개인 보호장구만 놓고 잠을 잤다. 일어나서 아침 7시에 청소까지 마친 시간, 화재출동이 울렸다.
조짐이 나빴다. 공장 화재였다. 다급하게 오고 가는 무전이 불안했다. 종이컵 공장이라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부탄가스 공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 가장 오래 걸렸었다. 연기와 폭발음을 보고 화산이 폭발하면 저렇겠구나 넋을 놓을 정도의 대형 화재였다. 비상소집이 걸리고 관내가 아니었지만 복귀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었다.
다시 그 날, 지휘차에 타고 있었다. 지휘차는 현장 팀장과 화재조사관이 타고 있다. 나는 본부에 상황 전달과 현장 사진을 찍는 일을 해야 했다. 아, 사진.
사진은 조금 찍는다. 카메라를 만져봤다. 신문방송학과를 다녔고, 다큐멘터리 PD가 되겠다는 오랜 목표로 영상과 사진을 익혔다. 지금은 나름 프로덕션의 필름 메이커다. 교수님도 미적 감각이 있다고 그랬었다. 감각이 있는 것과 가치가 있는 것은 다르다는 말을 덧붙이시긴 했지만.
소설 '빅픽쳐'에서는 소방관의 화재 진압을 찍는 사진가의 모습이 묘사가 된다. 주인공의 심정을 서술해주던 전지적인 작가의 시점은 그 장면에 있어서는 오직 렌즈를 바꿔 끼우고 셔터를 누르는 급박한 행동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바뀐다. 딱 그랬다. 여기저기서 소리치는 게 들려왔고, 호스 전개하는 것을 도우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중에 꽤 멀리 떨어져 있던 대형펌프차의 백미러도 녹았다는 걸 알았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생각이나 감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인명피해가 없는 것이 확인되고, 연소 확대를 막은 후에는 잔화 정리라고 하는 길고 지루한 작업이 시작된다. 쌓여있는 가연물의 양이 한두 시간 해서 될 양은 아니다. 종이펄프를 중장비로 하나하나 뜯어가며 물을 쏟는 작업이 이어진다. 연기는 계속 매캐하고, 타버린 건물도 위험해 보이기는 하고.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 교대로 방화복을 벗고 쉬고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몇 장 더 찍은 뒤 소방차 물 보수 작업에 투입이 되었다. 오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였다.
긴급하게 돌아가는 것은 연소 확대를 막는 초기 단계고, 진입 가능한 대원과 소방차 개수는 정해져 있기에 2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은 교대로 잔화정리를 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초반의 강렬한 기억만큼 반복되었던 작업의 기억도 강하다.
드디어 돌아가는 길에는 말 많은 반장님이 감상을 늘어놓았다. 자기는 복귀할 때가 가장 묘하다고. 현장에서 한참을 정신없이 활동하고 복귀할 때, 조금만 멀어지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이 되게 낯설고 묘하다고.
그의 그런 감상과는 무관하게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도 모르도록, 평화롭도록, 일상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맞을 거다.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건 어쩌면 사치다. 알아봐 주길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당연히 그렇게 할 일을 할 뿐인 것이 맞다.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체계화된 시스템에도 개인의 감상이 낄 틈은 없다.
몇 년 전 운동권 선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난 운 좋게 여러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는데, 깊은 감사까지 느끼진 않았다. 그런 얘기를 늘어놓을 때 선배는 그게 당연해지는 사회를 위해 운동을 하는 거고, 그게 나은 사회인 것이 맞다고 했다. 그렇지만 인간인 이상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보상, 금전적이 보상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정이라도 바라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사람 사는 데에는 그런 게 필요하니까.
이런 생각을 정리할 시간 없이 소방서는 현장 활동 후가 한참 더 바빴다. 탄 자국이 만연한 방화복과 호스를 세척하고 장비를 정리하고, 그러면서도 출동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책임추궁 문제와 보고서들에도 시달리는 듯했다. 사실 그들이 한가하고 무료할 때를 더 많이 보았기에 섣부른 동정심은 없었지만
정작 일 하고 난 뒤에는 더 시달리는 모습이 왠지 억울하다. 물론 추가 수당이야 잘 나왔겠지만 그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보람'이라던가. 왜 그런 게 있을 텐데. 있어야 할 텐데. 왜 없지? 쑥스럽지만 분명 그런 게 필요할 텐데. 그래서 하는 일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그런 게 있다고 믿어지는 직업이어야 할 텐데. 우리 모두 그렇게 알고 있는데.
바쁜 일들이 물러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잊히려고 할 때 즘 사진을 정리했다.
무엇을 숨기리. 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괜찮은 사진을 건졌다는 희열은 결코 아니었다. 난 결코 순진한 인간은 못되지만 사진을 찍을 때 분명히 사진을 '건졌다'는 느낌을 무색하게 하는 욕구가 분명 있었다.
사진은 내가 그들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방법이다. 사진에는 시선이 들어간다. 나도 몰랐다. 내가 그들을 이렇게 기억하고 싶었는지. 하지만 난 내 생각보다 더 그들을 좋아한 듯싶다. 이 사진의 실용적 목적, 혹은 어떤 가치, 그런 건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다. 가장 깊은 소망은 분명히 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거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방서를 떠나기까지 1주일가량 남았을 때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기억이 되고 싶었다. 그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번에도 내 사진에는 가치가 아니라 감각만이 담겼을까? 그래도 좋다. 어떤 숭고한 가치를 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정말 담고 싶었던 것은 그저 그때 느낀 '감각'. 그 순간을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면 되었다. 기왕 기억하는 거,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사진으로.
기념하고, 기억할만한 것으로. 그곳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조금 허세 부리며 자랑할만한 것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기억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기로부터 이 사진이 소방서 입구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진의 주인공인 반장님은 폰케이스로 이 사진을 새기기도 했단다.
사진은 그 피사체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진을 찍은 주체도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나도 그곳에 있었다. 나도 1년간 소방서에 있었고,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반장님들을 좋아했고, 소방 조직도 싫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사진을 보며 이들도 그때를, 나를 조금은 추억해줄까. 그러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 너무 비루한 욕망이지만 어쩌겠나. 이런 진부한 찌질이인 것을.
현장업무를 떠나 안전체험관에서 홍보 업무를 맡던 시절, 자주 사진을 보며 떠올렸다. 아, 진부한 감성은 정말 싫은데. 하지만 알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말한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의 의미를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표현을 할 수 있는 종족이라 다행이다.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언제든 사진만 보면 그들이 오래오래 그리워질 듯하다. 안 어울리게도 정이 많고, 표현도 서투르지만 사진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사진을 보면 그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