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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현 Mar 10. 2022

도심 속 너구리 목격담

지난 여름의 기억

 지난 여름, 종종 산책하러 가던 하천가에서 너구리들을 보았다. 짙은 갈색 털, 튀어나온 주둥이, 킁킁거리는 코, 얼핏 보면 들개인 듯 삵인 듯 보이는 토종 너구리들이었다. 세 마리로 이루어진 놈들은 가족처럼 보였다. 놈들은 천변 아래 우거진 여름 풀들 속을 킁킁거리며 헤집다가, 이내 사람이 다니는 보행 도로까지 올라왔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놈들은 사람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슬그머니 피했다. 놈들은 먹이를 바랐다. 무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시늉을 하면 놈들은 거리를 두고 빙 에둘러 돌며 다가왔다. 사람들 중 일부는 먹던 새우깡이나, 고양이를 주려 사들고온 츄르나 저키 따위를 주었다. 놈들은 배가 고팠다. 근방에 놓여있던 고양이 사료통들을 게걸스럽게 이미 비우고 난 뒤였다. 


그 천변 인근에는 ‘그 양반’이라고 불리우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너구리가 나타난 그 날 사람들은 모두 그 양반 얘기를 했다. 그 양반이 올 때가 되었는디, 하고. 그 양반은 50대쯤 되는 중년 남성이었는데, 늘 9시만 되면 자기 몸뚱아리만한 플라스틱 통을 짐짝삼아 간이 수레에 끌고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그 통짝에는 고양이 사료만 한 바가지가 들어있어 인근 5키로메다 이내 고양이 식권은 다 그 양반이 챙겨준다는 것이 사람들의 정설이었다. 이야기는 이 너구리들이 여기 나타난 것이 다 그 양반 때문이라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아 글쎄, 그 양반이 인제는 너구리들까지 챙긴다는 거에요,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사료값은 어디서 나가지고? 자비로 한다는 거여요.


나는 그 양반이 궁금해졌고, 너구리를 바라보며 그 양반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양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예의 몸둥아리만한 통을 두발수레에 끌고는, ‘소리야!’ 하고 천변 굴다리 아래로 소리치며 나타났다. 그러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기별도 못한 진돗개만한 치즈 태비 고양이가 교태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그러고는 놈은 마치 그 양반을 기다렸다는듯 눈을 기분 좋게 길게 뜨고는 제 머리를 그 양반 다리에 부벼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양반은 마치 해야할 일을 하는 읍사무소 공무원처럼 능숙하게 굴다리 아래 놓여있던 사료 바가지에 통 속의 사료를 쏟아 부었다. 그러자 부벼대던 고양이가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고, 모두가 그 신기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그는 캣맘, 아니 캣댇이었다. 그가 등장하자 근방의 고양이들이 다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를 둘러싼 주변의 분위기는 갑자기 테마파크가 되었다. 지나가던 아이들, 연인들, 그리고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다 그 광경을 못미덥게 보던 어떤 아저씨는 큰 소리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보쇼, 당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거야. 이렇게 매번 챙겨주니까 동물들이 야생성을 잃고 사람 사는데로 내려오는 거라고. 그 양반은 아저씨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 먹이를 주었다. 나는, 사람들은 무언가 일촉즉발의 상황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다. 이보쇼, 당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거라고. 그러니까 너구리 새끼들까지도 내려오는거 아니냐고.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그 아저씨가 떠난 후 그 양반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구경하던 한 여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건 저 사람이에요. 이렇게 챙겨주니까 애들이 사람 사는데서 도둑질하지도 않고, 영역을 만들어 사는건데. 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해야하는일 아니요? 지자체에서 해야하는거 아니냐고요. 그걸 내가 하고 있다고요, 내가. 매일. (그러면, 사료값은 어떻게, 지원받으시나요?) 지원이요? 아니오, 다 내 사비로 하는거에요. 나는 이게 좋아요. 좋아서 하는거지, 안 좋으면 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마치 자기 말이 모두에게 잘 들렸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한 쪽에 꽂혔다. 저 멀리, 너구리들이었다.


굴다리 반대편에 있던 한 너구리가 조심스럽게 사람 다니는 도로를 넘어, 굴다리 아래 고양이 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놈은 누가봐도 어설픈 방법으로 은폐를 하고 있었다. 제 몸을 반쪽도 가리지 못하는 수풀을 엄폐물 삼아 빙 돌아,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고양이도 바보는 아닌지라 10미터 밖에서부터 위협을 감지하고는, 먹던 사료통 뒤로 자리를 잡고 일순간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너구리는 멈추지 않았다. 놈은 마치 공포나 두려움 따윈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보다 원초적인 욕구, 그러니까 굶주림에 의해 위협을 의식하는 돌기가 거세된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긴장된 순간을 지켜보았다. 너구리가 한 보 다가서면 고양이는 한 보 물러섰다. 고양이가 한 보 나아가도, 너구리는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먼 발치에서의 잠깐의 대립 후, 고양이가 훌쩍 도망갔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는 사료통에 다시 사료를 채우고, 그 통을 너구리 쪽으로 밀어주었다. 너구리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안심한 듯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떠났다. 아저씨는 말없이 너구리에게 사료를 한 되 더 퍼주었다. 구경꾼들 사이로 그러고 그도 떠났다.


그 후로 나는, 우리는 몇 번 더 비슷한 시간에 하천으로 향했다. 너구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다음날, 그 다음날이 되어도 너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누가 동물농장에 제보한거 아니야?, 왜?, 동물농장에 제보되면 보통 전문가에 의해 자연으로 돌려보내지잖아. 응, 그게 동물농장의 포맷이지. 그래, 그게 포맷이지. 그런 얘기를 하며 다니다 우리는 그 양반을 보았다. 그 양반은 여전히 제 몸뚱아리만한 통을 간이 수레에 끌고 다니고 있었다. 와아, 저 사람 정말 매일 오나보네. 그는 오늘도 왔고, 내일도 올 예정이었다. 우리가 천변으로 향하는 방향에 있던 어두운 거리에 어린 암코양이 한 마리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 막 눈을 뜬 보송보송한 솜뭉치들이었다. 그 양반이 여기에도 올까? 근처를 계속 서성이자 엄마 고양이가 하악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자리를 피했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 번에는 츄르를 사 갈 계획이었다. 그 양반은 올거야,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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