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다는 건 게으름이 아니었다

쓰러지기 직전에야 멈출 수 있었던 나에게

by 느린 반보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겨우 멈춘 거였다

번아웃이 오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의외로 이런 거였다.

“나, 왜 이렇게 게을러졌지?”

예전에는 이 정도는 해내던 사람이었다.
하루에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시간 쪼개서 취미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글도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할 일을 바라만 보다가 하루가 끝나버리곤 했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보다가,
문득 시계를 보면 밤.

“아… 오늘도 아무것도 안 했네.”
이 말이 하루의 마무리 멘트가 됐다.

무능한 게으름 vs 유능한 여유

그러다 한 번은 이런 문장을 보게 됐다.

“무능한 게으름은 경멸받지만,
유능한 사람의 여유는 낭만으로 포장된다.”

이 문장을 읽고 꽤 오래 멍해 있었다.

‘게으름’과 ‘여유’ 사이에는
사실 행동의 차이가 거의 없다.
둘 다 지금 이 순간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다.

차이는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붙어 있는 이야기였다.

성과를 많이 쌓아온 사람,
“원래 열심히 사는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카페에서 천천히 커피 마시고 책을 읽고 있으면

“와, 저렇게 사는 게 진짜 삶이지.”
“여유 있어서 좋겠다.”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반대로,
여기저기 시작했다가 자꾸 멈추고,
방향을 못 잡고 헤매고,
한 번씩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은

조금만 느려져도 곧바로 이렇게 불린다.

“저러니까 안 되지.”
“원래 저런 타입이야.”

똑같이 멈춰 있어도
한쪽은 힐링이 되고,
다른 쪽은 망한 인생이 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번아웃까지 갈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은 없다

번아웃이 왔을 때의 나는
당연히 후자 쪽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벌써 지쳤다.”
“지금 쉬면 안 되는 타이밍에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여유는 나중에 가지는 거지, 지금은 버텨야 할 때야.”

그러고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부르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번아웃까지 가는 데에는 나름의 이력이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힘을 쓰지 않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살았다면
사실 번아웃까지 잘 안 간다.

대부분은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수십 번, 수백 번 건네온 사람들이다.

“조금만 더.”
“여기서 포기하면 끝이야.”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안 되지.”

그래서 번아웃의 멈춤은
이렇게도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이 아니라,
너무 오래, 너무 많이 해왔던 사람이다.”

이 생각을 한 번 하고 나니까
바닥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방이 어질러지는 날, 나에게 다시 붙인 이름

다시 방이 어지럽혀지는 날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책상 위가 보였는데,
오늘은 어느새 컵, 영수증, 옷, 가방이
제각각 자기 자리를 주장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바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거다.

“아, 또 게을러졌네. 나는 왜 이 모양이냐.”

쓰레기봉투는 팽개쳐져 있고,
싱크대에는 그릇이 쌓여 있고,
바닥에는 어제 벗어둔 옷이 그대로 있다.

그 장면 하나로
내 인생 전체를 평가해 버렸다.

“봐, 나는 역시 안 변해.”
“역시 나는 작심삼일이야.”
“결국 제자리잖아.”

그때의 나는,
늘 이렇게 나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그래서 방이 어질러진 날 =
내가 망가진 날, 실패한 날이 됐다.

지금은 완전히 그러지 못하더라도,
조금은 다르게 보려고 한다.

방이 다시 어지럽혀져도,
그게 꼭 ‘게으름의 증거’만은 아닐 수 있다고.

회사에서, 사람 사이에서,
머릿속 생각들 사이에서
오늘 하루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돌아와
더는 “정리된 사람”인 척할 힘이 남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솔직한 상태일 수도 있다고.

오늘은 그냥 ‘숨 쉬기’만 해도 된 날

그래서 요즘은
방이 엉망인 걸 보는 날이면
일부러 이렇게 말해 보려고 한다.

“아, 오늘은 내가 에너지를 다 써버렸구나.
오늘은 그냥 ‘숨 쉬기’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야.”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그냥 이렇게만 해본다.

컵 하나를 싱크대로 옮기고 멈추기.
배달 온 봉투 하나만 접어서 문 옆에 세워두기.
쓰레기봉투까지는 못 묶어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 한 개만 치우기.

“내일의 내가 나머지 하나쯤은 더 치우겠지, 뭐.”

예전엔 이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이 안 됐는데,

지금은 이렇게까지 한 나에게
조금은 고마워해 보려고 한다.

“그래도 완전히 놓아버리진 않았네, 나.”

게으름이라는 잣대, 조금 옮겨 놓기

생각해 보면,
문제는 ‘행동’보다 ‘잣대’였다.

나는 늘 이런 기준으로 나를 평가했다.

“이 정도도 못 하면 게으른 거야.”
“쉬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놓고 쉬어야지.”
“남들 다 하는 만큼은 해야 기본은 하지.”

그 잣대를 그대로 들고 번아웃 상태의 나를 겨누니
당연히 항상 ‘부족한 사람’이 나왔다.

그래서 잣대도 조금 옮겨 보기로 했다.

예전의 잣대:
“오늘 이만큼 했으니까 쉬어도 된다.”

지금의 잣대:
“오늘 이만큼 버텼으니까, 이제는 쉬어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해냈느냐보다,
오늘 하루를 어디까지 버텼느냐를 먼저 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제는 이렇게까지 말해 보려고 한다.

“나는 무능해서 쓰러진 사람이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서 겨우 멈출 수 있었던 사람이다.”

번아웃을 통과한 사람에게 생기는 선 하나

번아웃을 한 번 크게 겪고 나면
인생이 드라마처럼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 안에 선 하나가 생기는 것 같다.

“아, 나는 여기 아래로는
나를 더 떨어뜨리지 말아야겠다.”

그 선 아래로
나를 함부로 밀어 떨어뜨리던 말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너 또 게을러졌잖아.”
“넌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돼.”
“역시 넌 변하지 않아.”

이 말들이 떠오를 때
예전에는 그냥 맞는 말처럼 들렸다면,

지금은 이렇게 되묻고 싶어진다.

“정말 게을러서 넘어졌을까?
아니면 너무 오래 버텨서 쓰러진 걸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끝까지 밟고 들어가는 걸
조금은 막아준다.

오늘 바닥에 누워 있는 나에게 건네고 싶은 한마디

이 글이
어떤 거창한 해결책을 주는 건 아니다.

다만,
혹시 지금 바닥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게을러졌지”라고만 말하고 있었다면,

이 한마디만큼은
입 밖으로 한 번쯤 꺼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무능해서 쓰러진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서 잠깐 멈춰 있는 중이다.”

이 말이
지금은 마음에 잘 안 와닿더라도,

언젠가 조금이라도 믿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게 아마 번아웃을 통과한 사람의
아주 첫 번째 회복 지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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