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아니라 숨 고르기라고 불러 보기까지
썰물인 날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도, 나는 그날마저 ‘뭐라도 해야 한다’고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번아웃 이후 가장 어려웠던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을 허락하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을 나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는 일.
몸은 이미 오래전에 한계를 알리고 있었는데, 머릿속은 끝까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지.”
“이것까지 안 하면 오늘은 진짜 너무한 거지.”
할 일 목록은 별로 대단하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리스트를 펼치면 이렇다.
밀린 청소 좀 하고, 세탁기 한 번 돌리고, 메일 몇 개 답장하고, 책도 조금 읽고, 운동도 30분만…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싶은 것들이다.
문제는 그 ‘이 정도’들이 모이면 금방 하루를 삼켜버린다는 거다.
몸은 “오늘은 쉬자”고 말하는데 머리는 “이건 해야지”라며 계속 새로운 할 일을 끌어왔다.
그래서 한 번은 정말로 이렇게 마음먹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로 살아보자.”
쉬어도 되는 날인데, 쉬면서도 일을 했다.
물론 말처럼 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목록이 계속 돌아갔다.
“그래도 세탁기는 돌려야 하지 않나?”
“메일 하나도 안 보는 건 좀 심한데…”
“책 몇 장이라도 읽어야 덜 찜찜할 텐데…”
몸은 분명 쉬고 있는데, 머리는 여전히 평일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쉼조차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쉬려면, 의미 있게 쉬어야 한다.”
독서, 산책, 전시회, 여행…
이런 건 ‘괜찮은 쉼’이고, 그냥 멍하니 누워 있는 건 ‘진짜 게으름’으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방향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오늘은 의미 있는 쉼 같은 건 하지 않기.
그냥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을 해보자.”
책도 꺼내지 않고, 넷플릭스도 일부러 틀지 않고, 일기도 쓰지 않고, 할 일 목록도 아예 열지 않았다.
쉬는 것조차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침대에 누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뜨는 일만 했다.
처음엔 내가 나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시간을 버려도 되나?”
“나, 진짜 망가지는 거 아닐까?”
머릿속은 한참 동안 비난과 걱정으로 시끄러웠다.
그런데 한두 시간을 그렇게 누워 있다 보니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몸의 힘이 한 꺼풀씩 빠져나가면서 이런 생각이 천천히 올라왔다.
“아, 이렇게까지 힘들었구나.”
“그동안 진짜 많이 버텼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시간이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나에게 뒤늦게 도착한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작은 하루의 조각들
생각해 보면 하루는 언제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밥 먹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 잠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씻고 나와 수건을 거는 순간, 컵 하나를 싱크대로 옮기는 행동.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이렇게 묻는다.
“오늘의 나는 어떤 조각들로 나를 지켰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버틴 조각들.
대충이라도 먹은 한 끼, 씻고 누운 몸,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른 시간.
그런 것들이 쌓여야 내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루를 잘 산다는 건, 사실 별거 아니다
번아웃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하루를 잘 산다는 게 무언가를 더 ‘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는 걸.
하루를 잘 산다는 건, 어쩌면 이런 거다.
건강하게 먹고, 적당히 자고, 기본을 지키며 나를 조금 회복하는 것.
설거지 한 번, 깨끗하게 씻는 일, 책상 위를 아주 조금 정리하는 일.
단순한 일을 더 단순하게, 하지만 정성을 들여하는 것.
집은 남 눈치 보지 않고 민낯으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그 민낯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하루면 충분하다.
“오늘은 많이 못 했어도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 정도면… 괜찮지 않냐.”
아무것도 안 한 날이, 내 삶을 이어 붙였다
요즘도 가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한 날이 오면 여전히 찜찜하긴 하다.
그래도 예전처럼 나를 바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부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오늘은 그냥, 겨우 나를 살리기 위해 버틴 날이었다.”
아무것도 안 한 날이 인생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번아웃을 지나고 보니 그런 날 몇 개가 오히려 내 삶을 겨우 다시 이어 붙여 준 날이기도 했다.
완전히 부서지지 않도록 숨을 붙들고 있던 날들.
그 날들 덕분에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고,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있다.
오늘 아무것도 못 한 당신에게
혹시 요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많다면 그게 꼭 무능의 증거만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그건 너무 오래 버텨온 몸과 마음이 뒤늦게 보내는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이렇게 조용히 중얼거려도 좋겠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겨우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그 숨이 조금 고르게 정리되면 언젠가 다시 한 발 정도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의 나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을 한 번쯤 나 자신에게 허락해 주고 싶다.
>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을 허락하자, 오히려 마음이 다시 움직이려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회복보다 더 어려운 건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