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가 아니라 업데이트라는 마음으로
몸이 조금 나아졌다는 느낌이 왔다.
예전처럼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완전히 부서져 있지도 않은 상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몸이 조금 살아나면 마음은 늘 예전 속도로 달리려 한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번아웃의 바닥을 찍고 올라오면
꼭 이 시점이 온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날이 줄고,
밖에 나갈 힘이 조금 생기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도 몇 장 읽게 되는 때.
그건 회복의 신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함정이기도 했다.
“쉬었으니까 이제는 달려야지.”
“이제부터는 진짜 제대로 살아야지.”
그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어느새 예전의 패턴으로 돌아가려 했다.
예전 버전으로 ‘복구’될 필요는 없었다
번아웃 이전의 나는 시작하면 늘 풀악셀이었다.
할 거면 끝까지,
할 거면 남들보다 더,
할 거면 버틸 때까지.
하루를 빽빽하게 채워 넣고,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이 시간에 한 개 더 할 수 있었는데” 하며
스스로를 쪼아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해내긴 했지만
그만큼 빨리 소진됐고,
결국 한 번 완전히 부서졌다.
그래서 다시 시작할 때만큼은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시작할까?”
“이번에는 망가지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을까?”
‘조금 덜’ 하는 쪽으로 일부러 기울이기
나는 일단 속도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예전의 할 일 리스트가 이랬다면,
업무 A 끝내기
업무 B 정리
메일 답장 다 하기
운동 1시간
지금은 이렇게 적어본다.
업무 A만 오늘 끝내기
업무 B는 틀만 잡기
메일은 중요한 것만 먼저 보기
운동은 20분만 걷기
그리고 오늘, 나에게 해줄 좋은 대우 한 가지
목표는 예전의 100이 아니라 70.
그리고 ‘나에게 해주는 것’은 0이 아니라 1.
하루를 다 써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를 남겨두는 사람이 되기.
번아웃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나는 예전 버전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새 버전으로 바뀌어야 살아남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고쳐 잡았다.
“나는 복구되는 중이 아니라,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될 대로 돼라, 그날은 나의 만찬날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속도 조절’이 생각으로는 되는데
생활에서는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떠오르는 저녁이 있다.
그날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오늘은 될대로 돼라.
그냥 내 만찬날이다.”
쉬는 날로 넘어가는 저녁이었다.
그날만큼은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나를 설득하던 밤.
마트에서 한우를 고르고,
파슬리와 샐러드, 야채 몇 가지를 담고,
저렴한 와인과 위스키까지 카트에 올렸다.
별거 아닌데도
내가 고른 행복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의식 하나: 그날만큼은 나를 위한 세팅
집에 와서 장 본 것들을 내려놓고
먼저 샤워를 했다.
회사에서 묵은 감정이
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방을 한 번 쓱 훑었다.
대단한 청소는 아니었다.
그날만큼은 나를 위한 무대를
살짝 정리해 두는 정도.
잔에 얼음을 하나 툭 떨어뜨리고,
위스키를 따랐다.
“오늘은 위스키, 너다.”
조용히 한 모금을 넘기자
숨이 길어졌다.
그다음에는
씻고, 손질하고, 굽고, 올리고.
한 접시씩 테이블 위에 자리가 잡혔다.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카메라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아까워서
그냥 눈으로만 찍어두었다.
다시 시작은, 이런 저녁으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만찬은
‘잘 살기 위한 의무’가 아니라
‘나를 덜 잃기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
번아웃 이후의 삶은
갑자기 드라마틱해지지 않는다.
대신,
필요할 때 이런 저녁을 꺼낼 줄 아는 사람이
조금씩 되어간다.
예전처럼 전력질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
그 약속을
말이 아니라 생활로 지키는 방식.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덜 벌고, 조금 덜 해내더라도
나를 덜 갈아 넣는 쪽으로
계속, 아주 조금씩 기울어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