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말고, 오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번아웃이 심할 때
일보다 더 힘들었던 게 하나 있었다.
일은 그래도 “일”이라고 이름이라도 붙일 수 있었다.
근데 사람은… 한 줄로 적기 애매했다.
회의, 카톡, 전화.
사소한 대화, 안부 인사, 부탁, 기대, 눈치.
어느 순간부터는
‘일의 피로’보다 ‘사람의 피로’가 더 크게 느껴졌다.
원래 나는 웬만하면 “괜찮아요” 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부탁받으면 들어보고, 시간 되냐고 물으면 만들어보고,
내 몸이 이미 한계여도 일단 “한 번 더”를 외쳤다.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 사이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근데 번아웃이 오고 나니
이게 조금씩 이상해졌다.
몸은 이미 한계인데,
입은 여전히 이렇게 말했다.
“아, 네. 괜찮아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못 한 채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내 몸을 깎아서까지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까?”
기분은 이렇게 흔들린다
내 마음의 날씨에 대하여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괜찮은 사람 같다.
식당 아주머니가
“이거 좀 더 드려요~” 하고 반찬을 얹어주면,
나오는 길에 괜히 커피값이라도 살짝 더 두고 오고 싶어진다.
그런 날은 누가 몸을 부딪치고 지나가도
“바쁘겠지 뭐.” 하고 웃어넘긴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정반대다.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히려 해서 급하게 뛰어가는데
안에 있던 사람이 그냥 시선을 피하고 버튼을 눌러버리면,
별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꽉 걸린다.
‘굳이 저럴 필요는 없잖아…’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으면서도
기분이 쿡 하고 내려앉는다.
그럴 때 나는 요즘 이렇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 오늘은 내가 좀 힘든 날이구나.”
세상이 갑자기 차가워진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남은 여유가 부족한 날일 뿐이라고.
그 사람의 불친절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
오늘의 예민한 나도 나의 전부는 아닐 테니까.
상대의 입장만 보느라
내 자리는 비워놓고 살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상대의 입장”부터 먼저 봤다.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바쁘니까 그랬겠지.”
“나까지 힘들다는 티 내면 안 되지.”
그런데 그 사이에 계속 빠져 있던 존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내 입장이었다.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말에 집에 와서까지 마음이 아픈데도
나는 습관처럼 덮어버렸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속으로는 이미 이런 말이 쌓이고 있었는데도.
“나도 사실 좀 서운했어.”
“그 말, 나한테는 꽤 아팠어.”
상대의 사정은 이해해 주면서,
정작 내 감정은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번아웃이 오고 나서야 이게 보였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입장을
한 번도 제대로 세워본 적이 없구나.”
사람에게서 덜 닳기 위해
내 편부터 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관계에서 딱 한 가지를 연습해 보기로 했다.
“나를 덜 소모하는 쪽으로 아주 조금만 기울어 보기.”
거창한 건 못 한다. 대신 이런 것부터.
하기 싫은 약속은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이번엔 힘들 것 같아요.”
라고 한 번 말해 보기.
퇴근 이후에 오는 연락은
바로 답하지 말고 숨 한 번 돌리고 답해 보기.
늘 120% 맞추던 걸
오늘은 80%까지만 해보기.
처음엔 엄청 불편했다.
메시지를 늦게 보내면 괜히 미안했고,
약속을 한 번 거절하면
“이제 저 사람이 나를 다르게 보지 않을까?” 걱정이 올라왔다.
근데 이상하게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바쁨 속에 살고 있었고,
나는 나 혼자 내 역할을 너무 크게 부풀려 믿고 있었다.
“좋은 사람” 말고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번아웃 이후의 나는 이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모두에게
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러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관계는 서로 무리하지 않으려다
천천히 멀어질 수도 있다.
예전엔 그게 무서워서
나는 나를 먼저 버렸다.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감정을
먼저 쥐어짜 냈다.
그러다 결국 한 번 완전히 부서졌다.
그래서 이제는 목표를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려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관계에서도, 나 자신한테도.
관계의 날씨와 내 마음의 날씨를
같이 보는 연습
이제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내가 너무 크게 흔들리는 날이 오면
기준을 이렇게 나눠 본다.
상대의 입장
“저 사람도 오늘 여유가 없는 날이었을 거야.”
내 마음의 상태
“근데 오늘은 나도 여유가 별로 없다.”
예전엔 늘 첫 번째만 봤다.
그래서 결론도 늘 같았다.
“이해하자. 내가 참자. 내가 예민한 거겠지.”
이제는 두 번째 말도 같이 붙인다.
“그래도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만 이해하고 그만해야겠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나를 끝없이 소모하는 건
같은 일이 아니니까.
나를 지키는 게
이기적인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 본다.
“관계에서 나를 조금 덜 쓰기로 한 건,
상대를 덜 사랑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나도 같이 살아남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덜 소모할 때
관계도 오히려 조금 더 길게 간다.
그래서 오늘의 나에게는
이 말만큼은 먼저 건네보려고 한다.
“오늘 힘들었지.
그래도 오늘은,
나를 끝까지 깎아내리면서까지
버티진 말자.”
그게 아마,
사람 사이에서 너무 닳지 않고
번아웃 이후의 삶을
조금씩 이어가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