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과 민폐 사이, 나를 지키는 말들
번아웃이 오기 전까지
나는 거의 습관처럼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저 괜찮아요.”
웃기게도,
가장 괜찮지 않을 때도 이 말이 제일 먼저 나왔다.
누가 물으면
“요즘 좀 힘들어 보여.”
“일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늘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좀 피곤해서 그렇지 뭐.”
그 말이 지나가면,
상대의 얼굴은 편해지고
대화는 가벼워지고
그 자리의 공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그 “괜찮아”라는 말이
내 안에서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아야 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해야 한다.’
‘괜찮다고 말했으니, 이제 진짜 괜찮아져야 한다.’
그때 나는 알았다.
“괜찮아요”는 상대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 말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솔직함과 민폐 사이에, 빈칸이 있었다
완전히 솔직해지는 말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왠지 아직은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괜찮아요”로만 버티는 것도
이제는 더 위험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빈칸이 하나 필요했다.
내 상태를 다 쏟아내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속이지도 않는 말.
상대를 붙잡고 흔들어대는 고백이 아니라,
내가 나를 빠져나오게 하는 말.
예를 들면 이 정도의 말.
“정말 괜찮진 않은데, 그래도 버티는 중이에요.”
“요즘 컨디션이 좀 왔다 갔다 해요.”
이 말들이
대단한 해결책을 주진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이 내 안의 상황을 조금 바꿔 놓았다.
“아, 나는 지금 괜찮은 게 아니구나.”
그걸 내가 먼저 알아차리게 됐다.
남들 앞에서가 아니라
내 마음 앞에서.
말의 깊이는, 관계의 거리였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깊이의 말을 꺼낼 필요는 없다는 것도
번아웃 이후에야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인사 같은 “괜찮아요”로 충분하고,
누군가에게는
중간 정도만 내밀어도
서로의 하루가 조금 덜 거칠어진다.
아주 드물게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흐트러진 채로 말해도 괜찮아지는 날이 온다.
나는 이제
말의 깊이를 “성격”이 아니라
“안전”으로 결정하려 한다.
솔직함이 민폐가 되는 게 아니라,
아무 데서나 꺼내 놓는 솔직함이
나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솔직함 민폐”라는 생각을 조금 바꾸기
오랫동안 내 안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힘들다고 말하면 민폐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면 성숙
그래서 웬만하면
“괜찮아요”를 고집했다.
근데 번아웃을 지나고 나서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아무한테나 다 쏟아내면 위험
아무한테도 말 안 하면 더 위험
그 사이에
좁고 안전한 통로 하나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지금 배우는 방식이다.
괜찮아지려고 노력 중이야
번아웃을 겪고 나서
조금은 알게 됐다.
진짜 괜찮지 않을 때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건,
결국 나를 더 빨리 고갈시키는 말이었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말해 보려고 한다.
“나는 괜찮아지려고 노력 중이야.”
“괜찮은 날과 안 괜찮은 날이 왔다 갔다 해.”
“지금은… 솔직히 말하면, 한 반쯤 정도?”
어쩌면 이 정도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솔직함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요즘
입에 ‘괜찮아’만 달고 살고 있다면,
언젠가 아주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나에게
한 번쯤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사실은… 정말 괜찮지는 않아.”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번아웃 이후의 삶은
아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