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태되는 방식
금요일 저녁, 친구와의 약속까지 취소해가며 선배의 엑셀 파일을 붙잡았다. 엉망으로 깨진 수식들, 손으로 일일이 입력한 듯한 데이터들. 나는 이 비효율을 참지 못해 밤늦게까지 모든 수식을 자동화해 완벽한 파일을 만들어 선배에게 넘겼다. 이제 클릭 한 번이면 모든 숫자가 일사천리로 바뀔 터였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내가 마주한 광경은 기괴했다. 선배는 내가 심어둔 수식을 모조리 지워버린 채,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산기 화면에 뜬 숫자를 엑셀 시트에 하나하나 손으로 입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런 그가 회사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승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조직의 상단에 위치한 것을 보며 나는 기묘한 공포를 느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그 선배가 처음부터 계산기만 고집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신입이던 시절에는 계산기를 잘 두드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기술'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세상이 엑셀로 넘어갈 때 그 변화를 학습하기보다, 본인의 익숙한 고통에 안주하는 법을 택했을 뿐이다.
문득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AI를 마치 공기처럼 다룬다. 복잡한 코딩이나 자료 분석을 AI에게 맡기고 순식간에 답을 얻어낸다. 만약 내가 그들이 내놓은 AI의 결과물을 믿지 못해, 굳이 포털 사이트를 하나씩 검색하며 확인하고 있다면? 그것은 엑셀 수식을 지우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선배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회사가 요구하는 기술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우리가 '회사를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포부를 지키려면, 역설적으로 도구가 바뀌는 속도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게을러지는 순간, 우리는 '경력'이라는 이름의 성에 갇힌 채 후배들에게 "그거 계산기로 다시 해봐"라고 말하는 빌런이 되고 만다.
나의 목표는 명확해졌다. 단순히 엑셀을 잘하는 선배가 아니라, AI가 가져올 새로운 파도를 가장 먼저 타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훗날 내 후배들이 나를 보며 "우리 선배는 엑셀 수식을 다 깨버려"라고 수군거리는 대신, "우리 선배는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어"라고 말하게 만드는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은 유지보수가 불가능한 구형 모델이 되는 길이다. 나는 기꺼이 매일 나를 업데이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