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동기들

epi.9

by 우기뚜기

정신병원에 입사 시 나의 동기는 10명이었다. 우리는 입사 기념으로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모두 오랫동안 일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다들 정신병동에 저마다 뜻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우리는 정신병동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공유하였다.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가족 중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있어 병원에 오게 된 사람부터 대학교 성적에 맞춰 들어온 사람 등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공통점은 모두 정신병동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난 사람 없이 다들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나고 동기 중 한 명이 퇴사하였다. 다들 조금씩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 또한, 조금 놀랐었다. 겨우 한 달 만에 동기가 한 명 줄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10명이던 우리는 9명이 되었다. 동기 중 유독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있었다. 병원의 기숙사에서 지내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나의 룸메이트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다른 동의 기숙사 아파트에서 지내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자주 식사를 같이 했다. 그로 인해 점점 가까워지고 친해졌다. 조금씩 사라져 가는 동기들을 보며 우리는 절대 퇴사하지 말자고 술잔을 나누며 도원결의 하였다. 마치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처럼 말이다. 조금은 웃픈 약속도 하였다. 우리 세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퇴사하게 된다면 나머지 두 사람도 같이 퇴사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힘든 정신병동 생활을 버티고 싶었다.


그로부터 약 2달이 지나고, 나의 룸메이트와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던 신규 여자 선생님이 추가로 퇴사하게 되었다. 그 여자 선생님은 퇴사기념 술자리에서 병동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소위 말하는 태움을 당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거의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이 병동에서 당했던 일들을 말하는 동기를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8명이 되었다.


약 2주가 지나고 한 명의 동기가 추가로 퇴사하게 되었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응급사직 하였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응급사직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의 동기가 되니 충격적이었다. 응급사직한 동기는 정말 뜻밖의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동기 술자리에서 전혀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고, 병원에 대해 어떠한 불평불만도 말하지 않았던 동기였다. 퇴사를 하는 사람은 조용하다고 했던가, 그렇게 그 동기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7명이 되었다.


동기들과 함께 입사한 지 5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가슴 아픈 이별을 맞았다. 나와 가장 친했던 동기 두 사람이 한 번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평소 자주 식사를 하며 서로를 위로해 주고, 병원에서 안 좋은 일들을 당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버텨가던 동기들이었다. 이들의 퇴사 결정은 나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나눴던 우리의 도원결의는 어디간것이냐며, 이들의 가는 발길을 붙잡았다. 하지만 나의 동기들은 이미 마음을 확고히 다지고 병동에 사표를 던졌다. 이들의 빈자리는 나에게 큰 상실감을 불러일으켰다. 평소 살아오며 타인에게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이들의 빈자리가 불러온 상실감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이 이야기해 준 것들 중 친한 동기가 그만두면 퇴사욕구가 크게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독립적인 나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도 결국 나약한 신규 간호사일 뿐, 그들의 빈자리는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5명이 되었다.


입사한 지 약 6개월 만에 동기들의 50%가 사라졌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부족한 병원 복지, 급여에 대한 불만, 타 병동의 살벌한 분위기 등등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오래 버티기 힘든 구조였다. 운이 좋았던 나는 저 중에서 유일하게 병동의 분위기가 좋았다.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타 병동의 분위기는 상당히 경직되어 있고, 살벌한 편이었다. 개중에는 인격모독을 당한 동기도 있었다. 업무적인 혼남인 것인지, 태움인 것인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나에게 조심스러웠다. 다만, 동기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시선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졸업한 대학교 출신, 지능에 대한 비난, 업무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등 동기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들이었다. 동기들이 빠르게 사라지며 나는 퇴근 후에 혼자 남겨진 기숙사에서 매일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사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병원의 태움이 존재한다. 태움이 줄어드는 추세라고는 하나,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태움이 존재하는 병원이 있다. 졸업한 나의 대학 동기들에게서도 태움을 당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이것은 분명 문제다. 한국 간호조직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간호사의 직업적 프라이드, 직업적 역량 강화 등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퇴근 후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열 명이 함께 술잔을 들던 그 밤은, 지금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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