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엄마

epi.10

by 우기뚜기

중년의 여성이 입원했다. 이전에 병원에서 갱년기를 진단받고 생긴 조절되지 않는 우울감을 계기로 입원하였다. 다행히 치료과정에 협조적이었으며 병동에서 생활 중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 분은 워커홀릭이었다. 자신이 모기업의 임원이라고 소개하며 의료진과 주기적으로 면담 시 항상 일얘기를 하였다. 특히나 입원기간에 대해서 자주 질문하였다. 빨리 퇴원하여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항상 나는 이분에게 현재는 치료에만 전념하시라고 자주 말씀드렸다. 그때마다 바닥을 보며 낙담해하시는 표정이 기억난다.


이분도 사연이 있었다. 오래전 남편과 이혼 후 두 아들을 여자 홀몸으로 키워오셨다. 생활력이 굉장히 강했고, 타고난 리더 기질이 있는 분이셨다. 흔히 말하는 여장부 스타일. 삶에 대한 책임감이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가끔 이분의 큰아들께서 병동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치료과정에 대해 자주 질문하셨다. 다행히 어머니처럼 아드님도 치료과정에 협조적이었으며 젠틀한 성격이었다.


이분은 나를 보고 아들 같다고 좋아하셨다. 투약 시 항상 밥은 먹었냐며 나의 안부를 물어주셨고, 젊은 나이에 힘든 일을 한다며 가끔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보곤 하셨다. 이분을 보면 나 또한 엄마가 생각났다. 성격도 책임감도 나의 엄마와 많이 닮으셨다. 그래서 좀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이분과 면담을 위해 찾아가곤 했다.


시간이 지나며 안정된 모습으로 병동에 잘 적응했는가 싶었으나, 종종 불안한 안색으로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들이 관찰되었다.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면 항상 밖에 있는 아들 걱정, 일 걱정이셨다.


" 어머니, 아들 생각해서라도 밖에 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 병동에서 편하게 쉬세요. 퇴원하시면 또 힘들게 일해야 되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쉬겠어요. "


이 말을 정말 자주 했던 것 같다. 이때마다 웃으며 고맙다고 하셨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 미소가 씁쓸해 보였다. 아마도 밖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던 일상에 익숙해져 온전히 쉬는 법을 잊어버리신 듯했다. 책임감이 강하고 어깨가 무겁게 사시는 분들이 휴식을 즐기지 못하시는 것 같다. 반복되는 번아웃을 외면하며 지쳐가는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다.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나의 엄마가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하셨다. 치료과정에 협조적이었고, 투약의 효과가 좋았다. 퇴원할 때 병동에 간식과 과일을 주고 가셨다.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키셨던 분이었고 나는 이분과 일찍 헤어지게 되어 조금 아쉽기도 했다.


" 어머니, 이제 퇴원하시면 잠도 잘 주무시고, 운동도 조금씩 하시고, 잘 쉬세요. 꼭이요. 이제는 조금씩 비워내고 내려놓으시면서 사세요. 편하게. "


퇴원하고 또다시 워커홀릭으로 살아가실까 걱정되어서 했던 말이다. 병동에서 생활하며 조금은 쉬는 법을 알아가셨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버티시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이제는 어깨의 짐들을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셨으면 좋겠다.

이전 10화사라진 동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