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8
조현병으로 입원한 중년의 여자 환자가 있었다. 입원 시 위생이 굉장히 불량하였고, 악취가 심했다. 치료진의 질문에 어떠한 답변도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앞으로가 걱정되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사관리 시 치료진이 다가가 지속적으로 식사를 권유하였으나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언제나 묵묵부답으로 식사를 거절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담당의는 식욕증진제를 처방하였다.
환자분은 약 일주일이 넘도록 허공을 바라보며 병동을 배회하였다. 긴 시간 동안 어떠한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식욕증진제를 복용 중임에도 식사를 하지 않아서 결국 TPN 수액(고영양 수액요법)을 연결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자분은 지속적으로 수액줄을 뽑기 시작했다. 주의 깊게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병실 침상이며 바닥이며 피가 흥건했다. 솔직히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항상 인력이 부족한 병동,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계속해서 사고를 치는 환자를 보면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아픈 사람이다... 안타까운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되뇌며 분노를 삭이곤 했다.
환자는 결국 수액줄을 계속해서 뽑기 시작하여 안전을 위해 격리하였다. 보호자의 동의 하에 강박까지 처치하기도 하였다. 묶여있는 환자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분명 누군가의 엄마일 텐데 자식의 마음으로 보면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환자가 입원한 지 약 2주가 다 되었을 시점이었다. 식사시간에 식판을 들고 환자에게 가져다주었다. 평소 무표정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던 환자가 나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순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래서 환자분께 뭐라고 이야기하셨나요? 질문하니,
"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죄송합니다...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치 기적을 보는 느낌이었다. 말을 이렇게나 잘하는 사람이었다니. 나도 모르게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웃는 얼굴의 나를 바라보며 환자분도 웃고 계셨다. 나는 이 사실을 보고했고, 병동의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은 기뻐했다. 이유는 2가지였을 것이다. 하나는, 환자의 상태가 나아졌기 때문이고. 둘은, 더 이상 환자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환자는 빠르게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식사도 잘하셨고, 정맥 주사 처치에 거부감도 없어졌다. 호전된 환자분은 더 이상 자신에게 해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약물의 투약만으로 이렇게 증상이 빠르게 호전된다는 것이 언제 봐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환자분과 짧게 면담을 해보니, 평소 조현병 약물을 잘 복용하다가 최근에 증상이 사라져 더 이상 복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임의적으로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급격하게 증상이 악화되어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환자와 면담 중 퇴원 후에도 지속적으로 약물 복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교육하였다.
환자는 증상이 호전됨과 동시에 빠르게 퇴원했다. 다행인 것은 이후로 그 환자를 병원에서 보게 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퇴사 후에도 가끔 이 일을 떠올린다. 마치 기적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당시 느꼈던 놀라움과 안도감, 다행스러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정신이 돌아온 환자가 나는 정말 반가웠다. 그래서 처치가 필요할 때마다 그 환자에게 살갑게 말을 걸곤 했다. 이 일은 병원에 입사 후 처음으로 겪었던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