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1
근무했던 시절, 조절되지 않는 우울감으로 입원한 청소년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대부분 팔목에 다량의 자해흔이 관찰되었고, 병동 입원 중에도 자해를 시도했던 아이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고 면담을 진행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 제 인생 망했죠? 맞잖아요. 솔직히..."
면담 중 들었던 말이다. 고작 10대 주제에 인생이 망했다고 표현하다니. 저 아이는 대체 어떤 일들을 겪어왔길래 어린 나이에 저런 말이 나왔던 것일까. 마치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면담 중임에도 감정이 조금 흔들렸다. 나는 아이들의 과거가 궁금했다. 대체 무엇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이유는 세부적으로 제각각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불안정한 가정사와 학업 스트레스, 교우관계의 문제 등으로 원인이 규합되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인생이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어린 환자들은 평범한 아이들이 겪지 않는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거나, 외부 요인으로 인한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 및 교내 따돌림을 당하는 등 성인이 겪어도 버티기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 진짜 거지 같네."
면담 중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말이다. 간호사는 항상 온화하고 단정한 말투를 사용해야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 나의 과거가 떠올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너무 어리잖아. 정체성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애들이 이런 일들을 겪는 의미에 대해 신이 존재한다면 강력하게 질문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 줬다. 병동을 라운딩(병동 안전을 위해 순회하는 행동) 하고 있으면 "쌤!" 이라고 부르며 나에게 다가오곤 했다. 그리고 나의 손에 종이로 접은 학과 거북이를 선물로 주거나 나를 닮은 캐릭터를 그려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병동 생활을 따분해했다. 왜냐하면 내가 근무했던 A병동은 폐쇄병동으로 스마트폰 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운동, 병동 내 TV 시청, 종이접기, 장기 두기 등 다양한 취미를 만들었다. 그런데 유독 독서를 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치 내가 삼촌이라도 된냥 잔소리 아닌 잔소리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얘들아, 책도 좀 읽어. 이럴 때 아니면 너희 안 읽을 거잖아. 맨날 TV만 보지 말고."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나에게 웃으며 "아~ 쌤! 책 읽으면 오히려 머리 나빠져요!" 하며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답을 하곤 했다. 그런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입원할 때만 해도 치료진의 질문에 무응답으로 답변하고, 바닥만 쳐다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서로 어울리고 장난도 치고 웃는다.
정말 웃기지 않는가? 저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 전혀 아니었다. 약간의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안하게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웃었다. 대체 저런 아이들의 팔목엔 어쩌다 상처가 생긴 것일까. 팔목의 상처를 드레싱(상처를 치료하는 행위)하며 말했다.
"선생님이랑 약속해.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알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너 자신이야. 밖에 나가서도 절대 잊지 마."
병동에 입원한 모든 아이들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약속을 했지만, 정말 내 말을 들어줄까? 저 말을 들었다고 아이들의 삶이 현실적으로 정말 나아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증상이 좋지 않았던 아이들이 퇴원을 할 시점이 다가왔을 땐, 대부분 증상이 호전됨과 동시에 웃으며 이별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다시는.
퇴근을 하고 버스에서 생각에 잠겼다. 청소년 자살률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요즘, 아이들의 때가 묻지 않은 해맑게 웃는 모습도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것만 같다. 몇몇 아이들은 어른이 짊어져야 할 짐을 지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감정이입을 자주 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어른의 짐을 짊어졌었다. 항상 무표정에 쓸데없이 강한 척하던 아이였다. 학창 시절, 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부모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을 믿지 않았다. 주변에서 자주 들렸던,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 지나간다는 말은 나에게 저주처럼 들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눈높이에 맞게 최대한 공감해주고 싶었다. 힘든 인생을 같이 시원하게 욕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른으로서 조언을 주고 싶었다.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이 그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길 바란다. 그들이 부디 삶을 잘 버텨주길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