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은 아니래요, 그냥 무너졌을 뿐

움직이지 못한 하루, 기록도 멈춘 날의 이야기

by 낙화유수


입원은 아니래요.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무너진 게 아니고, 멈춘 거라니~ 어이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믿음이 안 갔다.

“지금은 고장이라기보단 정지 상태예요. 약을 조정해 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해서가 아니라, 대답이 그거 말고는 떠오르지 않아서.

*설명: 밝고 무표정한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 한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음*


유정 선생은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었다.


그건 나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언어도 받아들이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아서겠지?

나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고, 머릿속은 부유하는 먼지처럼 무거웠다.

무겁고도 가벼운 그 상태는 어느 쪽으로도 방향을 정하지 못한 나를 고정시켜야 했다.

병실 대신 내가 돌아온 곳은, 세탁기도 돌아가지 않는 내 방.

익숙하지만 나를 반기지 않는 곳.

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고, 우유는 일주일째 바닥에 흘러 있었어요.

처음엔 불쾌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샤워, 양치도, 이불 정리도 하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잠드는 대신, 그냥 눈을 뜬 채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곳!


*설명: 어두운 방, 바닥에 흘러 있는 우유자국과 냉장고 문 틈 사이 조용한 공기*


내 내면의 KO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없다는 건, 기록이 멈췄다는 뜻이니까.

그게 안도였는지, 절망이었는지는 혼란스러웠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때로는 살아 있다는 실감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지금은 그냥 비워두고 싶었다.

누구의 말도, 나의 기록도~~

*설명: 공허한 노트 화면, 글자가 적히지 않은 일기장이나 워드 파일*


저녁이 되었고, 배가 고팠왔다.

하지만 배가 고픈 것도 너무 귀찮아지는 건 뭔지?

무언가를 먹기 위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전엔 그런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이런 날이 올 수 있구나,

그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려다

바람을 쐬고, 햇빛을 맞고,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생각일 뿐, 내 발은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다.

*설명: 저녁 무렵 창밖을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 또는 흐린 지하철 역*


창밖에서 새가 울었다.

희미한 빗소리 사이로 들려온 날카로운 소리.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 분명한 그 존재가 한순간 나는 부러웠다.

나는 어디로도 날아갈 수 없는데.

그런 나를 KO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아니 관망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을지도~

그 순간 나는 정말 멈춰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감각조차 사라져 버렸다.

뭘 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을까?

머릿속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는 내 생각이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있어도 되는 날이 있다면, 지금이 그랬으면 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붙잡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붙잡아주지 않을 것이다.

혼자인데, 더 혼자가 되고 싶다는 이 마음은 뭐였을까?

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누구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벽지를 바라보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사라져도 눈치챌 사람은 몇 명이나 될는지?

어쩌면 이미 난 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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