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침묵 속에서 증명된다》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 때

by 낙화유수

오후 3시 45분이었다.

낮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는데,
시곗바늘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에는 비스듬한 햇살이 들이치고 있었다.
커튼을 조금 걷은 자리로 햇빛이 바닥에 정확한 각도로 내려앉아 있었다.

설명: 나른한 오후, 창가에 드리운 햇살과 빛에 비친 먼지 입자. 고요한 방.


나는 그 빛을 피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었다.


햇살은 내 무릎을 건드리고,
책상 위 메모지 끝자락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없는 가운데
나는 처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조금 느꼈다.


아침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눈을 떴지만, 그저 눈을 떴을 뿐이었다.
몸을 움직이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어떤 날은 세 시간,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침대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자주 고장 났다.
아니, 정확히는 멈췄다.
세상은 계속 움직이는데
나는 멈춘 채 방 안의 기류만 느끼며
매트리스와 이불 사이에 박제된 사람처럼 존재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햇살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왔다.
나는 그 빛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천장 쪽에서 부유하는 먼지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명: 햇살에 반사되어 떠다니는 먼지 입자들. 정지된 공기 속을 흐르는 빛의 흔적.


바람도 없는데
먼지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나보다 더 살아 있었다.


나는 가끔 그 먼지들처럼 살고 싶었다.
무게도 없고, 의무도 없고,
다만 빛과 함께 유영하는 시간 속 존재.


햇살은 천천히 벽 쪽으로 기울었고,
어느 순간 책상 위에 놓인 컵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나는 그 컵을 비우지 않았다.
아침에 마시던 차가 식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설명: 반쯤 식은 차가 담긴 유리컵. 햇빛이 투과되어 반사된 그림자가 책상 아래로 번지는 장면


누군가 말했다.
삶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반복과 미묘한 감각의 누적이라고.


나는 사건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하루 안에 있는 미세한 변화들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고,
그 빛이 물 위에 닿고,
그 물이 그림자를 흔드는 찰나.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증명했다.


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꺼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꺼지는 도중에도
세상은 빛을 보낸다.

설명: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오후.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방 안의 한쪽 구석.


나는 가끔 생각한다.
왜 어떤 날은 고요가 버겁고,
어떤 날은 그 고요가 전부가 되는 걸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이렇게 귀하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도 닿지 않는 벽을 이미 알고 있어서다.


창밖의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졌다.
해도 완전히 지고, 방 안은 어둠에 잠겼다.
나는 여전히 전등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눈이 익는다.
보이지 않던 책상 모서리도,
의자 위에 던져둔 옷도
천천히 형태를 드러낸다.


오늘의 나도 그랬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였지만
그 안엔 작고 귀한 감정 하나가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에필로그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것 같은 하루였다.
누군가는 의미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확실히 존재했던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그 하루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다음 편 예고


《3편 – 존재는 침묵 속에서 증명된다》
: "말이 없는 곳에서, 존재는 더 또렷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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