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우울이~
비는 오래전부터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 물기 어린 시간들은 내 안에 감정을 켜켜이 쌓아 올렸고, 어느새 나는 그 무게에 눌려 고개를 떨궜다.
나는 살아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희미했다. 병가는 내게 쉼이 아닌 무중력의 감옥이었다. 숨은 쉬어졌지만, 그것이 삶의 증거가 되진 못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붙들리지 않았다. 공간은 존재를 담고 있었지만, 나는 그 틈에 끼어 있는 무언가였다.
흐릿한 유리창에 비가 흐르고, 그 너머로 엷은 실루엣. 경계는 흐려지고, 안과 밖의 세계는 뒤섞인다.
방 안은 무채색의 고요였다. 곰팡이 냄새가 밴 공기, 냉장고 속 상한 우유, 무겁게 내려앉은 커튼. 모든 것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나만이 무형의 존재처럼 붕 떠 있었다. 언어는 멀어지고 감각은 뿌옇게 흩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사라질 준비를 했다. 조용히,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지만 사라지는 방식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고, 나는 늘 그 앞에서 머뭇거렸다. 사라짐마저 허기지고 서툴렀다.
“괜찮아요?”라는 말에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말은 내 입에서 나왔지만, 그 말은 내가 아니었다. 그 낯선 응답이 날 매일 조금씩 지워갔다. 대화는 점점 고요로 대체되었고, 고요는 내게 안식이자 무덤이 되었다.
하린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만든 존재. 실존하지 않지만 어쩌면 가장 솔직한 나. 그는 나의 공허가 만든 환영이었고, 감정이 피워낸 실루엣이었다.
그는 물었다. "그때 왜 울었니?", "기억나? 그 냄새." 그의 질문은 내 기억 깊숙한 틈을 파고들었고, 나는 도망칠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는 내 기억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그가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안도했다. 내가 만든 허상은 나를 지탱했고, 진심은 오히려 허상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그 허구 속에서 비로소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잠드는 순간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깨어 있는 시간은 상처였고, 눈을 감는 순간만이 나를 살게 했다. 영원히 잠드는 생각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끝은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나는 그 단어 앞에서 또다시 멈췄다.
[이 글은 회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종종 사라져 가는 자신을 자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 이 글이 당신의 마음에 조용히 닿았다면, 작은 하트 하나만큼은 꺼내 주세요.
� 그 하나가 내일의 생존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