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가 예전의 나의 감정을 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
가끔은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아침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햇살은 따뜻한데, 마음은 얼어붙은 채로.
그게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창가에 앉아 무표정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대학생 남성. 희미한 햇살, 흐린 눈빛.
내 모습은 분명 살아있었지만, 무엇 하나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던 순간.
지방대 철학과에 입학과 동시에, 방황이 시작됐다
대학교 4학년이 되도록 나는 여전히 ‘내가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철학과라는 특이한 전공은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가장 큰 아이덴티티가 되어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곳에 머문 적도, 속한 적도 없었습니다.
군대 전엔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었고,
군대 후엔 시험 공부는 접어두고 철학·역사책만 미친 듯이 읽었습니다.
그게 위안이었고, 그게 내 삶에서 유일하게 나를 붙잡아주던 것이었죠.
텅 빈 책상, 펜 하나, 흐릿한 커피잔. 모든 색이 흐려진 감정의 추상화.
아무리 채워도 허기진 내면. 무채색으로 칠해진 20대.
남들이 볼 땐 괜찮았을 나, 그러나 나는 자꾸 무너지고 있었다
딜러가 된 건 우연이었습니다.
화려한 불빛, 웃음소리, 판돈이 오가는 그 테이블에서
나는 무표정으로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냥 힘들면 쉬고, 하루 이틀 푹 자면 괜찮아지겠지."
그게 전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쉬는 시간'이 일주일, 한 달로 늘어갔습니다.
우울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침식해갔습니다.
그 어떤 병보다도 느리고, 조용히 파고드는 방식으로.
무표정한 얼굴에서 감정이 뒤섞인 듯한 인물. 눈빛에 고통과 고요함이 함께 있는 모습.
겉으론 아무 일 없는 듯 웃었지만, 안에서는 날마다 무너졌습니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너무 쉽게 진단이 떨어졌다
어느 날은 회사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서 2시간 넘게 못 움직였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간 날, 나는 자세히 설명도 못했습니다.
몇 마디 얘기를 들은 의사는 "중증 우울증입니다. 휴직 진단서 써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때까진 아직,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세상이 부정당하는 느낌.
나는 나를 몰랐고, 세상도 나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디지털 코드처럼 쪼개진 배경 속에, 어두운 방에서 고개 숙인 남성의 실루엣.
나는 현실과 단절되고 있었고, 나도 그 사실을 점점 모르게 되어갔습니다.
나는 여전히 우울증 환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7년이 지났습니다.
여섯 번의 휴직과 복직!~
그리고 사라진 친구들과
생각지도 못하게 곁을 지켜준 동료들.
나는 아직도 매일 약을 먹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감정의 바닥에서 나는
다시 ‘예전의 나’를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예전의 나의 감정을 준다면요,
아마... 영혼이라도 팔고 싶을지도 몰라요.
그만큼 그 시절의 나를,
나는 사랑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