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의 숨소리

그림자가 나를 따라왔다

by 낙화유수

그날 새벽, 나는 내 숨이 아닌 숨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나보다 느리고, 무겁고, 오래된 숨이었다. 다리는 낮보다 새벽에 더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 위를 가르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안갯속에 잠겨, 마치 바닥 없는 세계로 이어지는 문처럼 보였다. 공기는 차갑고 묵직했다. 코끝에 닿는 냄새는 젖은 시멘트와 오래된 강물, 그리고 혀끝에서 느껴지는 금속성의 맛이 섞여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얇게 젖은 자갈 위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발소리가 메아리쳤다가, 물 위로 흩어졌다. 그 사이사이, 있어야 할 물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옆에 선 검은 코트의 남자는 고개를 들고 다리 밑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의 끝을 따라가면, 인간의 형체를 닮은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 경계는 물결처럼 흐트러졌다가 다시 모였다.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가슴이 아주 미세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호흡이 존재한다는 건 확실했다.

안개 낀 강 위, 다리 기둥 아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부유하는 그림자 실루엣.


“저건… 뭐죠?” 나는 속삭였다. 내 목소리가 강물에 튕겨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남자는 대답 대신 오른손을 들어 내 어깨를 살짝 눌렀다.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시선은 이미 붙잡혔다. 그 존재는 마치 내 시선을 먹어치우듯,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순간, 왼쪽 옆구리를 스치는 기류가 느껴졌다. 바람은 없었는데, 마치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간 뒤 남긴 잔향 같았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돌아서려는 찰나, 남자가 내 팔을 낚아챘다. “절대 등을 보이지 마세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절제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숨어 있었다.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개와 어둠이 섞인 얼굴은 형태가 불분명했다. 그 속에서 두 점의 눈이 빛났다. 색도, 깊이도 없는데, 내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쿵… 쿵…’ 내 맥박이 그림자의 호흡과 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숨이 얕아지고, 무릎이 풀렸다. 바닥으로 주저앉기 직전, 남자의 손이 내 손목을 강하게 쥐었다. 그 힘이 피를 타고 전해져, 빠져나가던 공기가 다시 들어왔다. “숨을 크게 쉬어요. 얘들은 공기를 빼앗아요.” 그의 말은 설명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다리 밑, 어둠 속 그림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장면.


숨을 들이마시자, 공기가 폐를 찌르는 듯 차갑게 들어왔다. 정신이 약간 돌아왔다. 그림자의 눈빛이 희미해졌다. 마치 내가 빠져나온 걸 아는 듯, 천천히 몸을 틀었다. 다리 기둥 쪽으로 스며들 듯 물러났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경계선 위에서 흐릿하게 맴돌았다. “왜… 그냥 두는 거죠?” 내가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어깨너머로 강 위를 바라봤다. 안개 위에 줄지어 움직이는 형체들이 있었다. 처음엔 바람에 흔들리는 수초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람이 멎어도 계속 이동했다. “한 놈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보세요.” 그의 손끝이 멀리 움직이는 형체들을 가리켰다. 그 순간, 깨달았다. 다리 밑의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었

다.

강 위 안갯속, 줄지어 이동하는 여러 개의 그림자.


그림자 무리는 소리 없이 움직였다. 물 위를 걷는 건지, 공중을 미끄러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중 몇은 사람 크기였지만, 몇몇은 배만큼 거대했다. 시선이 그쪽에 붙잡히자, 발밑에서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떨궜을 때, 내 발목 바로 아래로 검은손 모양의 그림자가 스쳤다. 살갗에 닿지 않았는데도, 서늘한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남자가 내 팔을 세게 끌었다. “여긴 오래 머물면 안 됩니다.” 걸음을 옮길수록, 발목 뒤쪽에서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없이 무언가가 따라오는 기척이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때 깨달았다. 그의 손도, 나처럼 떨리고 있었다.


강둑에 도착했을 때, 동쪽 하늘이 옅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강물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그림자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물과 함께 우리 쪽으로 흘러오고 있었다. 남자가 짧게 말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그는 골목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발밑 그림자가 하나 더 생겨 있었다. 내 그림자와 나란히 움직이는, 형태가 내 것과 똑같은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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