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위에 선 봄

다시 물 위로 돌아온 아침

by 낙화유수

안동댐 상류, 부포리의 물안개는 오늘도 질기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새벽 5시 40분, 온도 8도, 습도 84%. 손끝에 스치는 공기가 서늘했지만, 차갑기보다는 부드럽게 피부를 감쌌다. 강변에 피어난 냉이꽃 냄새가 희미하게 바람을 타고 왔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아주 살짝 번졌다가 사라졌다.


나는 벨리보트 위에서 천천히 노를 들어 올렸다.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잔물결이 번지고, 그 원이 수면 위의 아침 햇살을 밀어냈다.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는 낮게 울렸다가 금세 물속으로 스며들었다. 물결에 부딪히는 내 몸의 무게가 오직 이 아침을 실감하게 했다. 이곳은 항상 이렇게 말을 아꼈다.


노 젓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였다. 안갯속에서 들려오는 건, 가늘게 일렁이는 수면 소리와 멀리서 날갯짓하는 물새의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들은 묘하게도 내 심장 박동과 겹쳤다. 마치 곳이 내 몸속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안개가 물 위로 내려앉아, 보트의 그림자를 삼켰다.

짙은 물안개 속에서 홀로 떠 있는 1인용 벨리보트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호수는 이제 풀렸고, 댐물은 봄비를 머금은 듯 묵직하게 흘렀다. 산란기를 앞둔 배스들이 얕은 수심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지난 계절 동안 묵혀둔 장비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할 시간이 왔다.

노를 다시 저으며 하류로 몸을 맡겼다. 어탐기 화면에 흐릿한 구조물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직사각형의 윤곽, 무너진 기둥, 기울어진 벽… 오래된 폐가 같았다. 그 위를 스쳐 지나가자 심장이 이유 없이 뛰었다. 마치 오래 숨겨왔던 기억이 불쑥 되살아난 것처럼.


그 순간, 저 멀리서 또 다른 1인용 벨리보트가 안개를 가르며 다가왔다. 노의 각도가 부드러웠다. 오랜 경험이 묻어나는 움직임이었다. 우린 서로를 알아봤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번의 인사가 모든 말을 대신했다.

b8cce562-8d6e-486c-b841-6f6a197b0341.png

이미지: 어탐기 화면에 떠오르는 수중 폐가 형태의 구조물


수면 위의 시간은 유난히 느렸다. 손목시계 초침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했고, 생각은 천천히 풀렸다. 낚싯대를 쥐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낚시가 목적이 아니었다. 내가 붙잡아야 하는 건 물고기가 아니라, 흔들리는 나 자신이었다.


여기서는 그게 가능했다. 수면은 나를 붙들었고, 나는 댐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오래 남을수록, 나는 다음 새벽에도 이곳에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런 반복 속에서, 오늘 같은 순간이 더 오래 기억되기를 바랐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같은 마음을 붙들어 준다면, 그 온기는 이 강 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육지 쪽으로 보트를 당겼다. 노를 빼고, 로프를 잡아당기며 발끝이 차가운 진흙에 닿았다. 그 감촉은 현실로 돌아오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진흙이 스며드는 오리발 속으로 차가움이 번졌지만, 그조차도 이상하게 편안했다.


벨리보트를 끌어올리며 한 번 더 수면을 돌아봤다. 안갯속 수면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내가 잠시 머물렀던 흔적은 이미 지워지고 있었다. 이 댐을 떠나는 건 늘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였다.

2e185527-7b57-43f4-ac99-a5141f900289.png

이미지: 물에서 벨리보트를 끌어올리는 장면,


이날의 기록은 낚시 이야기가 아니다. 강 위에서 머무름과 흐름을 견디는 법, 그리고 다시 하루를 건너갈 용기를 배우는 이야기다. 배스가 아닌, 나 자신을 잡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자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