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만 열리는 길
새벽 네 시 반, 골목 끝의 공기는 깊은 잠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밤새 내려앉은 물안개가 그 빛을 삼켜버려, 빛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내 호흡이 가늘게 흘러나오며 안갯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희미함 속에서 나는 한 걸음을 떼었고, 신발 밑창에 스민 물기가 ‘찰박’ 하는 소리를 만들었다. 도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그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들렸고, 그 작은 울림이 골목의 양쪽 벽면을 타고 길게 이어졌다. 이 시간,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시간이다. 세상이 잊은 틈새를 걷는 기분은 묘하게도 해방감을 주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감시하는 시선 같은 불안을 느끼게 한다. 마치 어둠과 안개가 결탁하여 모든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는 듯했다. 발걸음이 골목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소리는, 내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는 듯했다. 멀리서 기계음이 희미하게 번져왔다. 처음엔 트럭이 지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것이 오래된 가로등이 깜빡이며 내는 불안정한 진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소리는 내 옆을 스쳐가는 듯하다가, 다시 뒤에서 따라붙는 기분을 주었다. 그 미묘한 방향 변화는, 누군가의 발걸음이 내 뒤를 밟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었다.
새벽안갯속 골목길, 가로등 불빛이 번지며 길게 늘어진 한 사람의 그림자.
누군가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있다는 착각은, 나를 어김없이 뒤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뒤엔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 불빛이 만든 내 그림자만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내가 멈춰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엔 바람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이 골목의 공기는 정지해 있었다. 그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불쾌한 한기가 밀려왔다. 가방 속에서 카메라가 ‘툭’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나의 습관이자 방패였다. 누군가는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오히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을 찍고 싶었다. 안개는 모든 것을 흐리게 하지만, 때로는 그 흐릿함이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오늘의 안개는 어제보다 무거웠다.
골목이 끝나갈 무렵, 공기가 달라졌다. 오래된 콘크리트 냄새와 함께, 금속이 오래 녹슨 듯한 쇳내가 풍겼다. 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시야를 가득 채우는 낯선 형체가 나타났다. 철제 펜스 뒤에 반쯤 허물어진 창고가 서 있었다. 벽면엔 물때가 얼룩져 있었고, 창문 유리는 절반 이상 깨져 있었다. 그 깨진 창문 틈 사이로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듯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허물어진 창고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 주변은 안개와 고인 물, 깨진 유리 조각.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발밑에서 물웅덩이가 ‘출렁’하고 울렸다. 그 안에 무언가가 비쳤다. 처음엔 내 얼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여 더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내가 웃을 수 없는 방식으로. 얇게 찢어진 입술과, 눈가에 번진 그 웃음은 비웃음에 가까웠다. 순간, 창고 안에서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빛은 사라지고, 안개만이 남았다. 그 두께는 더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안갯속에서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길은, 돌아갈 수 없어요.” 그 목소리는 마치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친밀하게, 그러나 낯설게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발이 물웅덩이에 걸려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내 팔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차갑고도 단단한 손이었다. 피부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힘은 망설임이 없었다. 안개 너머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그것은 길을 잃은 자의 눈빛이 아니라, 길을 찾으려는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내 뒤쪽 어둠을 경계하고 있었다.
“따라오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는 내 손목을 놓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대로 그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이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방향만큼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발자국과 숨소리가 안갯속에서 메아리쳤다. 내 심장은 점점 빨라졌지만, 그와 나 사이의 보폭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안갯속,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뒤돌아 서서 손짓하는 장면.
그가 멈춰 서서 손가락으로 다리 밑을 가리켰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를 닮았지만, 그 경계는 흐릿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길이가 변했고, 때로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한 몸에서 뻗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들은 물결처럼 일렁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화면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붉은 문구가 깜빡였다. ‘ERROR.’ 남자가 짧게 웃었다.
“그건 사진에 남지 않아요. 기억 속에만 존재하죠.”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확신이 숨어 있었다. 그 순간, 다리 아래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날 새벽의 전부다. 나머지는 아마도 내가 잊고 싶은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날 아침에도 내 발은 그 골목을 향해 걷고 있었다. 길 위의 그림자는 여전히 내 발밑에 붙어 있었고,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나는 끝까지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