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숨은 시선
저수지 위에 드리운 그림자가 사라진 뒤에도 심장은 천천히 가라앉지 않았다.
낚싯대를 접어 배낭에 넣고 둑길을 내려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발소리는 없었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등 뒤에서 미세하게 밀고 오는 느낌이 있었다.
물안개는 둑 아래로 흘러 마을의 첫 골목까지 번져 있었다.
안개가 발목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젖은 천처럼 차가운 감촉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집으로 곧장 향해도 되었지만 발걸음은 뜻밖에도 골목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벽돌 담장 위로 밤새 내린 물방울이 길게 매달려 있었고 가로등 갓 아래 거미줄은 은빛으로 떨렸다.
노란 불빛은 힘이 없었고 노면의 물웅덩이는 그 빛을 받아 얇은 잔물을 만들었다.
나는 호흡을 길게 내쉬며 걸음을 늦췄다.
발끝이 물을 건드릴 때마다 동심원이 퍼져나갔다.
그 원의 끝이 벽돌 벽을 스치고 돌아오면 작은 울림이 신경을 건드렸다.
누군가 어젯밤 남기고 간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 동네는 생각보다 오래된 물길이 많아.
말은 짧았지만 길을 고르는 데 충분했다.
새벽의 젖은 벽돌 골목과 희미한 가로등 불빛
골목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배수구 뚜껑 틈에서 맑은 물이 역류하듯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수지보다 높은 자리에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쭈그려 앉아 손끝을 그 물에 대보았다.
의외로 냄새는 깨끗했다.
썩은 기운도 비린내도 없었고 피부에는 분명한 떨림이 전해졌다.
미세한 진동이 심장 박동과 합쳐지며 이상한 동조를 만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물길의 방향을 눈으로 따라갔다.
작은 웅덩이들이 이어져 한 줄의 가느다란 선을 그리더니 골목 끝 붉은 철문 앞에서 멈췄다.
철문 옆에는 엎어진 플라스틱 통과 함께 5구 로드거치대가 기대어 있었다.
검은 고무 캡에는 말라붙은 진흙이 박혀 있고 프레임에는 급하게 문지른 듯한 닦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최근에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 물건의 주인을 알았다.
김태식.
한때 저수지를 함께 떠다니며 벨리보트의 밸브를 서로 확인해 주던 사람.
그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던 등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소문 속에서만 살았다.
멀리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바로 이 근처에 숨어 산다는 말도 있었다.
붉은 철문 옆에 기대어 있는 5구 로드거치대 클로즈업,
손잡이에 손을 얹자 안쪽 공기가 한 번에 빠져나오며 쇠와 오일 냄새가 섞인 숨이 얼굴을 스쳤다.
안쪽은 어둡고 길쭉한 그림자들이 바닥을 따라 겹겹이 늘어져 있었다.
벽 쪽에는 수리용 공구가 펼쳐져 있었고 낡은 접이의자가 비스듬히 기대 있었다.
바닥에는 반쯤 열린 플라스틱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뚜껑의 가장자리에는 손가락으로 닦은 타원형 자국이 남아 있었다.
최근에 열렸다 닫힌 흔적이었다.
나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먼 곳에서 낮은 윙~~ 소리가 골목의 공기와 겹쳐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어딘가에서 반복적으로 끊어졌다 이어졌다.
마치 타이밍을 재는 사람의 호흡처럼 일정하고도 의도적이었다.
그때 골목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걸음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서 있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어깨가 안쪽으로 굽어 있어 더 마르게 보였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고 주머니에 넣은 손목의 각도만이 약간의 긴장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나를 통과해 철문 손잡이와 바닥의 물길을 번갈아 훑었다.
나는 몸을 약간 틀어 그의 시야에서 문을 가렸다.
그는 몇 걸음 더 다가오더니 낮게 물었다.
" 그 문 아직 열리나? "
목소리는 건조했고 친절하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대답 대신 나는 손잡이를 톡 하고 두드렸다.
철문이 금속성 떨림을 남기며 미세하게 울렸다.
그 순간 멀리서 밀려온 안개가 골목을 둥글게 감쌌다.
저수지의 숨이 길을 찾아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안갯속에서 번지고 사물의 윤곽이 부드럽게 풀렸다.
남자의 표정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가 곧 다시 평평해졌다.
그가 한 발 더 다가오려는 순간 철문 안쪽에서 가늘고 거친 긁는 소리가 났다.
바닥을 지나가는 무언가의 마찰음.
나는 손을 내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안갯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바람이 아니었다.
안개 낀 골목 입구에 검은 모자 남자가 서 있고 붉은 철문과 물길이 보이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