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간 코드
회의실은 고요했지만, 고요는 소리가 아니라 냄새로 전해진다. 눅눅한 카펫, 오래된 전선에서 나는 금속 타는 냄새가 사람들의 대화보다 먼저 와있었다. 스크린 속 계단 영상은 멈춘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몇 초마다 프레임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돌고 있었다. 네 번째 단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마치 정지화면 같았으나, 자세를 누가 봐도 아주 교묘히 연출하려다 실패한 듯 방향이 바꾼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눈을 오래 두고 보면 그 미세한 떨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윤은 조명을 낮추었다. 불빛이 한 칸 줄자 어둠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그 어둠 속에서 민재는 무언가를 본 듯 몸을 기울였다. 그는 테이블 사이로 미끄러져 나온 은박 포일을 집어 들었다. 포일 표면에는 좌표가 찍혀 있었는데, 그것은 지도라기보다 흩어진 파편 같았다. 런던, 파리, 알 수 없는 수치들. 숫자와 도시 이름이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느낌이랄까?
네 번째 단 앞에서 멈춘 인물과 흔들리는 시간 코드
“정지된 게 아니라 흔들리는 거야.” 윤이 말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쪽이 틀릴 수도 있다.”
분석요원은 화면 구석의 픽셀을 확대했다. 노이즈가 별처럼 켰다 꺼졌다. 별자리는 그대로인데, 천체가 속해있는 성운이 달라진 듯 보였다.
민재는 포일을 살짝 비틀어 빛에 맞췄다. 순간, 네 번째 단이 오목하게 꺼져 보였다. 화면 속 인물의 발은 여전히 네 번째 단에 멈춰 있었지만, 실제로는 발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좌표 숫자가 일어섰다가 다른 지명과 겹친다
그때, 문 손잡이가 한 번 덜컥 흔들렸다가 멈췄다.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는데, 방 안의 공기가 살짝 찢기는 듯했다. 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지만, 누군가가 들어오려다 포기한 기척이 남았다. 윤은 고개를 들어 손잡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정은 나중이다.”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금은 넘어가 본다.”
문이 열렸다. 바깥 복도에서는 바람이 아닌 전선에서 피어오른 전기의 냄새가 밀려들었다. 스크린 속 인물은 여전히 네 번째 단에 머물러 있었지만, 여기 있는 그들은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다.
틈 사이로 엷은 빛이 스며든다
계단 위 공기는 얇았다. 발끝으로 네 번째 단을 건너뛰는 순간, 방 안에 있던 소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빈 소리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늦게 도착한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겹쳐졌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의 발소리가 있었다. 그는 잠시 멈칫했으나 다시 다섯 번째 단으로 발을 옮겼다. 그가 느낀 것은 확신이 아니라, 흔들림이었다. 그러나 흔들림은 때때로 진실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