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의 균열

같은 장면, 다른 제목

by 낙화유수

도심 광장의 전광판은 새벽의 안개와 네온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매일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사진 속 인물은 마치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화면 아래에 붙는 제목은 매번 바뀌었다. ‘단독’, ‘속보’, ‘심층’, ‘특집’. 글자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차이를 새로운 소식으로 믿었고, 고개를 들어 화면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러나 곧 시선을 내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료만 많이 준다면 저 화면의 주인공은 그 누구나 될 것이라는 무의식이 하나의 일상의 무덤덤한 소비처럼 느껴졌기에. 무엇이 갱신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믿음의 방향은 분명히 흔들리는 것은 확신적이다. 신뢰보다 빨리 변하는 것은 프레임뿐이었다. 자본의 힘은 그래서 위대하며 위험하다.

라엘은 인터뷰 스튜디오의 불빛을 뒤로하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마지막 대답으로 “공개가 원칙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막이 화면에 내려올 때, ‘공개’라는 단어가 살짝 뒤로 밀렸다. 미세한 흔들림이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편집의 흔적으로 읽혔다. 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무전을 껐다 켰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파도처럼 스쳤다. 종이컵을 들어 입술에 가져갔다. 뚜껑 구멍에서 새어 나온 김이 네온사인의 표면을 스쳐 지나며, 붉은빛을 푸른빛으로 덮었다. 잠깐 동안 언어가 다른 결로 변형된 듯했다. 빛은 언제나 말을 앞질렀다. 그리고 항상 그 색은 나의 희망과는 다른 법이 많았다.


사무실 안에서는 분석요원이 편집 타임라인을 띄우고 있었다. 같은 영상이 위아래로 두 겹 겹쳐 있었다. 위 트랙은 0.20초 앞서 있었고, 아래 트랙은 0.20초 뒤처져 있었다. 교차 지점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으며, 다른 지점에서는 망설임이 길게 늘어졌다. 아주 작은 시프트가 말의 결을 완전히 바꾸고 있었다. 요원은 “발언 각도 조정. 신뢰 5% 강화, 불신 8% 삽입.”이라고 적었다. 민재는 그 옆에서 모니터를 주시했다.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눈동자는 프레임 가장자리를 집요하게 훑었다. 그림자의 경계에서만 드러나는 픽셀이 있었다.


라엘은 광장 반대편에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케이스는 봉인 상태. 들뜸 경미함 이상~.” 문장은 짧았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또 다른 프레임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는 손가락을 멈췄다. 민재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옆자리 노인은 신문을 접고 있었다. 접힌 자국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습관의 흔적은 우연을 허락하지 않았다. 활자는 희미했지만 그 희미함이 오히려 더 신뢰로 다가왔다. 선명한 문구보다 흐릿한 활자가 오래 남았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시간들이 그의 무의식의 심연에 씨를 뿌리고 몇 번의 수확을 거친 상태였다.

라엘은 다시 종이컵을 기울였다. 뚜껑의 구멍에서 김이 피어오르며 네온 불빛을 휘감았다. 광고가 다시 바뀌었다. 민재는 휴대전화의 화면 밝기를 낮췄다. 너무 밝으면 지워지는 것이 있었고, 어둡게 봐야 보이는 것이 있었다. 광장의 전광판은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다른 제목을 입혔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가 곧 무심하게 돌아섰다. 그 반복은 어제와 같고 내일과 같았다. 그러나 민재의 눈에는 프레임 가장자리의 작은 균열이 보였다. 별빛 같은 픽셀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그것이 오늘의 단서였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내 재생했다. 대화의 내용은 그대로였으나, 재생 시간은 실제보다 길게 기록되어 있었다. 프레임이 늘어난 것이다. 시간의 균열은 말보다 명확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주위를 살폈다. 빈칸은 언제나 흔들리고, 흔들림 속에서만 진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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