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새벽 내내 비가 내렸는데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해가 떠 있었다.
마치 새벽이 슬픔을 다 쏟아내고 아침의 등을 힘차게 밀어준 것처럼.
아침 내내 아이들이 찾는 준비물을 하나, 둘 챙겨 주고 장난꾸러기들이 실수로 엎어놓은 지우개 통을 담아 세워두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기다리던 트럭 한 대가 멈추고 기사님이 내린다.
줄지어 내려지는 상자들과 문구점으로 다가서는 걸음.
벌떡 일어나 기사님의 손이 닿기 전에 문을 열고 반가움을 듬뿍 내밀어 본다.
“오셨어요? 시원한 물 한잔 드세요.” 나는 준비한 냉수를 기사님께 드렸다.
“하하 감사합니다. 오늘은 좀 많네요. 바쁜 하루가 되겠어요.”
“기사님만큼은 아닌걸요~ 오늘도 지우 학원 데려다주세요?”
“시간은 낼 수 있는데, 그 녀석 요즘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가 많네요. 허허..
트럭 타는 게 불편한 건지, 아빠가 불편한 건지.”
기사님의 운전석 앞쪽 창문엔 활짝 웃고 있는 지우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리고 기사님의 지갑에도, 조끼 왼쪽 주머니에도.
틈나는 곳마다 지우와 지우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있다.
바쁜 운행 일정 탓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종종 있다고...
초등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지우는 학교 앞에 세워진 트럭에 올라타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가 왔다! 아빠 차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닌다!
우리 아빠는 사실 산타클로스야!’
친구들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늘 자랑했다고.
그런 지우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올해 5학년부터였을까.
약속했던 시간에 보이지 않던 일이 계속되더니 어느 날부터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학원엔 혼자 걸어가겠다고 통보 아닌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사님은 속상한 마음을 숨긴 채, 혼자 걷기엔 제법 먼 거리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그 시간을 비워두었다고 하셨다.
애써 덤덤하게 터놓는 기사님의 목소리와 달리 양쪽 어깨는 오늘따라 한껏 내려가 보였다.
지우는 아주 가끔 문구점을 찾았는데 요즘 날엔 농담을 걸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키도, 말투도 훌쩍 자라 있었다.
그날 오후, 상자를 정리하다가 들어오는 지우의 얼굴에 놀라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아침에 기사님과 나눈 대화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던 까닭이었을까.
묻고 싶은 말도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어른의 관심이 아이에겐 참견으로 느껴질 것 같아서 망설였다.
천천히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지우야, 어서 와.”
녀석은 대꾸도 없이 고개만 꾸벅하더니 미리 머릿속에 생각해 온 것들을 빠르게 골라 집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던 사이 나를 지나쳐 무인 계산기 앞에 바코드를 찍는 녀석.
‘내가 있을 때는 나한테 줘도 되는데, 녀석도 참.’
이럴 때마다 저 기계의 존재성을 고민하게 된다.
무심한 표정으로 계산을 마친 녀석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 지우야. 너 혹시 학교 도서관 자주 가니?”
....?
왜 나는 하고많은 곳 중에 그곳이 생각났을까.
“소망 도서관이요? 요즘은 안 갔어요. 왜요?”
‘아.. 학교 도서관 이름이 소망이었구나. 아이들에겐 소망이 필요하지. 희망은 좀 거창하기도 하고..’
“... 사장님?”
“어? 어 미안.. 아니..
여기 오는 애들이 도서관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새로운 사서 선생님도 오셨다고 하고..
지우도 그래서 자주 가나..
궁금해서. 허허..”
말을 마치고 괜히 얌전히 잘 있는 뒷머리를 털었다.
지우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
“예쁜지 한번 봐볼게요.”
....?!?!?!?
뭔가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 녀석.
‘뭐야 그 말은??’
차라리 꼰대 노릇을 할 걸 그랬나.
괜히 빙빙 돌려 녀석 근황을 알아내려다 내 속이 들킨 기분이다.
차오르는 민망함에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본다.
5학년이 저 정도의 눈치와 센스를 겸비했다는 게 놀랍다.
요즘 아이들은 참 빨리 크고, 다양한 매체 속에서 일찍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니 지우의 변화가 조금은 이해도 된다.
나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내 마음의 질문을 지우가 알아챈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