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3. 우연이 우당탕탕

by 이유하

슬쩍슬쩍 문구점을 탐구하며 아이들과의 추억이 쌓이는 동안, 계절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날은 도서관 대청소를 하느라 종일 바쁘게 움직였고 수업 후에 반납하고 간 책들까지 정리할 게 많았다.

일이 마무리될 무렵 창밖을 보니 축구를 하던 아이들도 다들 돌아가고 텅 빈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곳곳의 소리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집에 가서 읽을 책 몇 권과 아이들에게 추천할 그림책 몇 권을 골랐다.

‘끙..’

집까지 괜찮겠지.

책을 고르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서 갈수록 팔에 근육이 붙는 느낌이다.


끙끙거리며 길을 건너다가 문구점 쪽으로 시선이 자연스레 움직인다.

불이 꺼진 그곳에서 기척을 찾는 나를 느끼고 잠시 놀란다.

‘오늘은 무탈했을까.’

혼자서 중얼거리며 무거워진 걸음을 옮겼다.

팔이 부족해 마감 세일 중인 빵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워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빵집 문이 피할 새도 없이...!!


‘꽝!!

... 우당탕탕’

팔 위의 책들이 떨어지고 놀란 마음에 다리가 풀려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버렸다.

“.... 아야..”

팔꿈치가 찌릿. 문에 맞은 책들이 제멋대로 뻗어있다.

그 문에 책이 아닌 내 이마가 맞았다면 별이 보였을지도.

“괜찮으세요?????”

나와 부딪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옷을 털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의 주인을 마주한다.

‘.... 헉!!’

당황한 입이 눈치 없이 크게 벌어진다.

“죄송해요..”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대뜸 사과부터 튀어나왔다.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죠. 아는 사람이.....”

이 사람 지금 뭐라 뭐라 하는 거 같은데 뒷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정신 차리자, 정신.

“어?? 피가 나는데요? 도와드릴게요. 일단 이거 다 들어드리면 될까요?”

허리를 굽혀 책을 집으려는 그에게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해보지만 망설임 없이 내 앞의 책들을 주워 탑을 쌓아 올리는 그 남자.

그에겐 쌓아 올려진 책들이 버거워 보이지 않았지만 이래도 되는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렇게 나란히 둘이 걷게 될 모습을 상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렇게 빨리, 그 장면 속에 들어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무슨 생각 중인지 이 남자, 말이 없다.

맡은 바 열심인, 멀티는 안 되는 모양이다.

흐트러짐 없이 내 책들을 바르게 들고 걷고 있었다.

내 발걸음의 끝이 어디까지 일지도 모르면서.

어떤 것도 묻지 않는 그 묵묵함과 순수함에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작은 키라고 느껴본 적 없이 살아온 내가 이 남자 옆에 서자 아이가 된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눈앞에 우리 아파트 정문이 가까워지고 그의 팔과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걸음을 멈췄다.

‘아..’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책들을 내게 조심히 건네주는 남자.

“정말 감사해요. 제가 들어도 되는데..”

감사하다는 말로는 다 차지 않는 순간들이 있는데 지금 내가 그랬다.

말로는 부족한 고마움과 이렇게 마주친 반가움을 전하고 싶었는데, 멀리서 바라본 그간의 시간은 나만의 것이기에 어떤 말도 덧붙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남자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를 보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캐릭터가 박힌 반창고를 꺼낸다.

그 커다란 손으로 떼어진 반창고를 내 팔꿈치의 찌릿한 부분에 감싼다.

찌릿해지는 느낌은 팔꿈치뿐이었을까.

“들어가서 씻고 연고 꼭 바르세요. 상처가 다행히 깊진 않은 거 같아요.”

그러고는 ‘가보겠습니다’를 남기고 고개를 가볍게 숙이더니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가는 남자.

멀어져 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괜히 한번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품에 안은 책들이 오지랖 그만 부리라며 나를 돌아 세웠다.


집으로 들어와 바닥에 책들을 내려놓고 냉장고를 열어 탄산수를 꺼냈다.

간질거리면서도 답답한 속을 달래고 싶었다.

이 고마움과 미안함을 반드시 나는 보답하고 싶었다.

벗어놓은 운동화에 다시 발을 밀어 넣고, 어두워진 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기서 두 정거장만 가면 서점.

나는 가장 나답게 그 남자에게 전하고 싶었다.

고마움과 내 안에 깊은 곳에서 꺼내진 이 활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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