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 시는 말이야

by 이유하

쓰다 고친 엽서가 책상 귀퉁이에 흩어져 있다.

달콤한 귤과 어제 고른 시집, 그리고 몇 번을 고쳐 완성한 엽서를 쇼핑백 안에 넣었다.

오늘따라 방정맞게 튀어 오르는 걸음이 부끄러워지는 아침이다.

문구점 문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오가는 사람이 뜸한 이른 시간이다.

쇼핑백을 문구점 문고리에 건 다음, 한 바퀴 단단히 감아 놓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걸어 둔 쇼핑백의 모습이 오전 내내 나를 따라다녔지만, 애석하게도 행방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점심을 먹고 곧이어 달려올 아이들을 떠올리며 책상 서랍에 넣어둔 젤리 봉지를 확인했다.

처음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을까 하다가 글을 쓰는 일이 먹고 싶은 호기심에 밀릴 것을 염려하여 결정한 장소였다.

아이들이 수업에서 배우고 책에서 배우는 것 말고 자신을 토닥이는 일에 더 애정을 가졌으면 했다.


‘시를 써봐요!

정해진 주제도 규칙도 없어요.

다만, 오래 생각하고 바라보고 쓸 것!’


도서관 게시판에 이번 주부터 새롭게 붙여 놓은 게시물.

멀리서도 눈에 띄도록 글자는 최대한 크게, 시가 어렵지 않도록 글씨체는 귀엽게.

그리고 종이 아래쪽엔 ‘진심을 듬뿍 담은 시인에게는 달콤한 선물이!’라고 작게 써놓았다.

처음 일주일간은 게시판에 붙은 글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다가 ‘달콤한 선물’에 시선이 머무른 아이들부터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고 일주일이 더 지났을까.

게시판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해랑이.

“시는 어려워요. 짧게 쓰는 게 시예요?”라고 물었다.

내가 바라던 큰 그림의 시작이 되는 질문이었다.

당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시는 말이야, 마음속에 느낌이나 생각을 짧고, 예쁘게 말로 표현하는 거야.

그래서 읽으면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고 어떤 기분이 느껴지기도 해.”

“음.. 그럼 예쁘게 쓸 줄 모르면요?”

이런 질문과 답변이라면 온종일 하고 싶어진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예쁜 것은 정해져 있지 않아.

말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 봐.

그림도 ‘예쁘다’ 말고 여러 가지 느낌을 주잖아.

화가가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시는 마음을 말로 그려주는 거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는 눈빛으로 다시 해랑이가 묻는다.

“뭘 써야 하는지 모르면요?”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맑은 아이의 입이 벌써 시인의 입을 하고 있다.

이마저도 몇 줄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해랑이는 알까.

“모르는 게 아니라 지나쳐서 그래.

자, 창문 밖을 봐볼래? 뭐가 보여?”

“운동장이요. 축구 골대. 그네. 형아들. 나무도요.”

“맞아.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시가 될 수 있어.

그럼 들어봐.

‘운동장이 보인다.

운동장은 골대도 그네도 형아들도 모두 안아준다.

숙제가 힘들고

시험이 어려워도

운동장은 항상 모두 안아준다.’

어때?”

“와!!! 그냥 말로 하는 것보다 듣기 좋아요!”

“바로 그거야. 자 그럼, 우리 해랑이 오늘 아침에 뭐 먹었어?”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사과요! 할아버지가 다 먹으면 또 사다 주세요.”

“그래? 선생님도 사과 좋아해.

그럼 오늘은 사과로 시를 써보면 어떨까?”

아이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가고 하얗고 귀여운 치아가 보인다.

“오! 해볼게요! 그럼 달콤한 선물은 뭐예요???”

가장 궁금했을 마음을 오래 참은 아이가 귀엽고 대견하다.

“그건 해랑이의 사과를 읽고 나서 알려줄게!”

아쉬움을 받아들인 해랑이의 머리 위로 다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소란스러웠던 도서관이 고요해지고 다시 나와 젤리만 남았다.


달콤함으로 시작한 작은 젤리 하나가 도서관의 이름처럼 소망이 되기를.

소망을 탐구하는 일에 지체 없는 작은 시인이 늘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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