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 거인으로부터

by 이유하

지난번 해랑이를 선두로 젤리에 대한 소문이 날개를 달고 학교 이곳저곳을 날아다닌 모양이다.

미리 소식을 들은 몇몇 아이들이 저마다의 시를 들고 책상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급히 쓴 종이를 올려놓는 장난꾸러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젤리를 받고 신나게 도서관에서 뛰어나갔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속삭이는 소리가 전부였던 공간에 아이들 각자가 만들어 온 글이 단 몇일만에 도서관 공기를 바꿔 놓았다.

못 보던 얼굴들도 있었고 짧은 쉬는 시간에 먼 교실에서 달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젤리라는 귀여운 보상은 우려와 달리 고학년 아이들에게도 꽤 인기가 많았다.

성숙한 키와 마음과는 별개로 쫀득거리는 식감과 달콤하게 퍼지는 젤리의 매력은, 어른인 나도 장을 볼 때마다 그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게 만드니까.

덧붙여 내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든 건, 치열한 학습에서 벗어나 시를 끄적이는 순간을 휴식처럼 여겨 준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고학년 아이들의 시는 단순한 관찰이 아닌 고백이자 성찰이었고 고발이 되기도 했으며 도리어 내가 더 위로받는 치유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로 물들어가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해랑이가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해랑아!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뭐 놓고 갔니??”

“선생님!! 헥헥..

거인 아저씨가 이거 전해주라고 했어요!”

???

“거인.... 아저씨?”

아차 싶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해랑이.

“아, 엄마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문구점 사장님이요.

태권도 늦어서 바로 가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

쌔앵~

뛰어나가는 아이의 발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바람처럼 왔다 사라진 곳에 덩그러니 올려진 쪽지 하나.

‘거인 아저씨라..’

아이다운 별명에 피식 웃음이 난다.

눈을 감고 해랑이의 키에서 그 남자를 바라보니 거인이라는 느낌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궁금한 표정과 말이 하루하루 쌓여갔지만 참을 수 있었던 건, 작은 나의 시인들과 젤리 덕분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요즘 같은 힙한 시대에 시집을 선물한 나의 올드함을 곱씹거나 부담을 줬다는 생각에 매일 밤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살짝 긴장되는 마음으로 쪽지를 펼쳤다.

.....?

울새...?

에밀리 디킨슨..

내가 아끼고 아끼는 시인.

고요하게 읽히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녀의 시.


‘혹은 쓰러져 가는 한 마리의 울새를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리’

거인이 머문 울새를 불러 내 어깨에 앉혔다.

한참을 그렇게 울새를 느꼈다.

젤리를 약속한 적 없는 거인에게 시가 왔다.

커다란 체격과 달리 아이만큼 순수한 그의 감상은 꾸준했던 나의 호기심과 의심을 모두 날려버렸다.

문구점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어떤 사연으로 일구어진 그만의 온실이자 아이들의 요새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읽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한다니.

내가 어떤 시를, 어떤 마음을 꺼내 보이더라도 그는 언제나 순수한 청중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수줍은 왼손이 어느새 답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오른손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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