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개예요

by 이유하


몸은 하나뿐인데

마음에 잔가지가 수없이 자라요


겹겹이 올라앉은 감정들이

오늘 밤은 너무도 무거워요


정작 나는 무탈한데

내가 아닌 내가 많아서

여러 감정을 번역하느라

하루가 또 가요


창문 밖으로 멀어진 표정을 살피고

잠옷에 남은 피로를 짐작하며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감정을 가늠해요


사진 찍듯 길마다 시선이 닿고

의미부여가 습관인 사람

멀리 보기

흘려보내기

영 재주가 없는 사람


나는 어디에 머무르는 중인가요


모든 게 다 마음이 쓰여요

너무 마음이 쓰여서

목도 쓰고

입도 쓰고


마스크도 쓰고

모자도 쓰고

다 갖다 쓰기 바빠요


나는 아무개예요

어제는 누구였고

오늘은 누구이고

또 어떤 날은 모두예요


다 받아서

다 해석하고

다 소화하고

다 정리하고


버겁다는 게 아닌데

미간으로 들으니

이해가 서투르시네요

눈을 감고 들으니

발을 헛딛으시네요


너무 사랑하느라

너무 공감하느라


너무 많은 걸 하려 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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