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받았습니다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는 나의 아이들이 유치원생일 때 현관에 들어서면 빙그레 웃으시며 “왔나?” “놀으라~” 하시는 게 다였다.
그러다 어느새 아이들 노는 방으로 들어가 잘게 자른 사과나 감을 툭툭 입에 넣어 주고는 빈 그릇만 들고 나오는 것이 그분의 애정 표현이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시며 ”응 얼른 가래이~“ 하셨다.
가까이 살며 거의 매일 드나들던 때였다.
아이들이 크면서 20분 거리로 이사하고 띄엄띄엄 가던 어느 날 부모님 댁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훌쩍 큰 아이들이 꾸벅 인사드리자 “으응 그래 또 놀러 와아~“하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초등 6 학년이던 첫째가 눈이 동그래져서 “할아버지가 또 오래요!”
“응 그게 왜? “
“맨날 얼른 가라 하셨잖아요”
“어머나”
아이는 어리기도 했지만 서울서 나고 자라 경상도식 언어를 몰랐나 보다. 그 숱한 시간 아이는 매 번 ‘할아버지가 얼른 가라고 하시네’라고 생각한 건가 싶어 안타까웠다.
“오야 얼른 가라 얼른 가라~” 하시는 게 정말 빨리 좀 가라는 뜻이 아님을 , ‘조심해서 잘 가라 너의 가는 길이 안전하길‘ 이란 뜻임을 경상도 부모 밑에 자란 나만 알았나 보다.
“어머 아니야 할아버지는 진짜 빨리 가라는 뜻이 아니야 너희 오는 거 좋아하시잖아” 하며 경상도 화법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이해를 못 하는 눈치다.
제대로 도착하지 못한 사랑이 더 있을까 봐 걱정이다.
가족들은 모두 나가고 혼자 있는 평일 낮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뭐하노? 점심 먹었나?”
“네”
“벌써 무써? 쫌 빨리 전화 할끄를 그랬네. 아니이~누가 포천 이동갈비를 사다 줬는데 느그 아부지캉 둘이 묵기에 많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작게 ) 느그 식구 다 줄 거는 없고 니만 와가 묵고 가라꼬 흐흐 “
평소 넉넉히 장을 봐서 우리 식구 몫까지 주시는 엄마라 미안할 것도 아닌데 1인분만 줄 수 있는 통화가 미안하셨나 보다.
“뒀다가 조금씩 나눠서 두 분 다 드세요 나 고기 못 먹을까 봐~” 했지만 자꾸 오늘 바쁘냐 하시길래 “갈게요”하고 나섰다.
조부모님이 보통 그러시듯 부모님도 유일한 손자들인 나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고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난 이제 사랑받기보다 부모님께 돌려드릴 나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른답게 말이다.
그런데 부모님 댁으로 가는 길 자꾸 기분이 뽕실뽕실해진다.
나만 먹고 가라는 말에 중년의 딸은 어린 딸로 잠시 돌아간 기분이다.
내가 들어가자 갈비를 굽기 시작하는 엄마에게 다가가 찡긋거리며 말해본다.
“맨~날 정연이 승연이하더니 날 더 좋아하네~“
“느그 아부지가 자꾸 전화하라 안 하나 헤리나 불러 미기라꼬”
“아잉 날 더 좋아했네 날 더 좋아했어” 괜한 농담을 더 하며 오늘만 잠시 어리기로 한다.
아버지의 마음이 내게는 잘 도착했다.
(*연재글을 스토리글로 잘못 올려 브런치북으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