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해봐야 안다
십 대 아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 생각하고 있었다.
잠자코 듣던 아들
“네~ 다음 꼰머”
"그게 뭐야??"
옆에 있던 둘째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꼰대요”
아이들 어릴 때 장면들이 떠오를 때마다 "너 세 살 때 목욕시키면~"하고 들려준다.
"슬퍼요"
"왜?"
"앞으로 엄마가 이 얘길 몇 번을 더 할까 생각하니"
발끈했지만 태연한 척 있었다.
생각한 적 없다.
나는 친구 같은 엄마 젊은 엄마일 거라 확신해서 물어본 적도 없다.
타인에게 아줌마라 불린 적 없는 아 이것도 있는데 뇌가 스스로 제거한 기억일지 모르겠다.
아줌마라는 이미지에 맞는 조금 물렁하고 허허하지 않는 정확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꼰대와는 거리가 먼 빠릿빠릿하고 젊은 엄마일 거라 착각했다.
내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엄마 그 얘기했잖아요 여러 번"
"엄마 카페에서 꼭 인원수대로 음료 시키세요 아줌마들 덜 시키고 나눠 마시는 거 진상 고객이라 해요"
바쁠 때 불쑥 전화하셔서 카톡 기능에 대해 묻고, 불특정 발신자들의 문자 내용을 주욱 읽어주며 이거 url 눌러도 되냐고 하실 땐 우선은 차분하고 짧게 설명해 드린다.
내가 아는 내 방식의 설명이니 당연히 한 번에 못 알아들으신다.
바쁘고 일행도 있는데 알리 없는 엄마는 같은 내용을 한번 더 말하고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해봤다고 반복하시고는
"어떻게 하면 돼?"
조바심이 살짝 난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해도 안 됐으면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바빠서 못 가고 집 앞에 대리점 가서 좀 부탁해요" 했었지.
나는 늙을 줄 몰랐나 보다.
세대차이 그건 나만 느끼는 건 줄 알았는데 한 방 맞았다.
그리고 작아진다.
잘 모르는 부모님들의 반복된 질문이 귀찮았던 모습
하나도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엄마 연배들의 이야기들
그 앞에 성의 없이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밉다.
꼰대가 된 충격의 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그날 이후 갑자기 부모님의 질문이 하나도 귀찮지 않아 졌다.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없어졌다.
같은 질문에 다시 답하면서도 화가 안 난다.
엄마가 들려주는 엄마가 재밌는 이야기에 절로 호응이 나온다.
나는 바보다.
늙어보고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