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시켜 먹는 딸

“아직도 자식에게 내가 필요해 천천히 가야겠다 “

by 헤리나

부모님은 내게 자유연애를 권장하셨지만 통금에 엄격하셨고 친구와의 여행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연애를 못 했다고 핑계 대 본다.


몇 번의 자유연애 후 20대 후반도 다 채워가던 어느 해 12월 31일 두 분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일찍이 너만 쓰는 전화번호도 따로 주고 휴대전화도 나오자마자 사줬는데 아직도 짝을 못 찾아왔으니 이제 부모가 개입해야겠다 “


맞선 강요의 해가 밝았다.

난 십 대에도 안 한 사춘기를 그 해에 겪어냈다. 아니 사춘기의 십 대가 할 못 된 언사를 그때 다 했다.


맞선


처음 만남 후 중매 주선자로부터 상대가 좋다고 했다는 전화를 받은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며 내방으로 와 내게 잘하고 왔다고 칭찬을 하셨다.

서둘러 두 번째 약속을 잡게 하고 그렇게 두어 번 만나고도 상대가 좋다고 하면 중매자는 양가 부모님을 재촉하여 서두른다.

그대로 진행시키려는 아빠께 나는 펄쩍 뛴다 “세 번 만나고 어떻게 알아!”

“그러면 몇 번 만나만 아노? “

“그래도 세 번은 아니지…. 변태면 어떡해?”

“그거를 백 번 만나믄 아나? ”

“그래도….”

“너 옛날에 태웅이가 병모보다 백 배 낫다고 하더니 나중엔 태웅이캉 헤어지며 뭐라했노?”


태웅이는 내가 한 때 빠져있던 춤추는 모습이 반짝반짝 싱그럽던 세 살 연하남이다. 어린 만큼 그때는 이뤄 놓은 것이 젊음뿐이던 아이이다.

그즈음 오래 알던 부모님 지인이 당신들 아들과 맺어주어 서로 사돈 하자고 말을 넣어오셨다. 그 아들이 병모다. 부모님끼리 오간 혼담이니 사정은 훨씬 좋은 남자였다.

나는 펄쩍 뛰며 지금 만나는 나의 태웅이가 병모 오빠보다 백 배는 낫다고 피력했다.


세월이 지나 보니 그때의 나는 마냥 어리고 미숙한 눈을 가졌었음을 안다. 그때의 나를 보던 부모님의 눈을 지금 알겠다 싶어 픽 웃게 된다.


부끄럽게 과거의 내 발언을 꺼내주시니 무안해져서

“그래도 몇 번 만나고 결혼은 아니지….” 말끝을 흐렸다.

“ 어떤 부모밑에 자라고 어떤 학교 나오고 한 이력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어도 대강은 맞아떨어진다. 결혼해서 살다가 진짜 못 살겠으면 도로 오면 되지? ”

“그게 뭐야아~” 나는 떼쓰듯 울음이 터졌다.

“설마더러 내가 앞으로 한 20년은 더 살아있겠지 니 못 살고 도로 오면 내가 책임질게”

“헉 그게 뭐야 이혼하란 얘기야!” 하며 울다 웃어버렸다.


장난 같았던 그 말은 그날 이후 참으로 든든하게 내 맘에 콕 박혔다.

그 뒤 나는 연애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당당하게 만드는 말이 아빠의 저 말이다.

“어! 정 못 살겠음 도로 물리면 되지~” 의 마음으로 살았더니 세상 별로 크게 화날 일도 없고 아득바득 이겨먹을 일도 없고 뭐든 다 그렇게 큰일이 아니더라.

이러구러 나이 들어 평범한 삶을 살며 중년이 되었으니 ‘음 아빠의 그때 그 말이 진짜 다시 오란 말은 아니었구나’ 싶다.


일단 결혼하면 손쉽게 물릴 수는 없는 거였다.


돌아오면 언제든 받아줄 것 같던 든든한 아빠는 최근에 내가 그 말을 꺼내자 “내가 그랬나~?” 하며 싱긋 웃고 마신다.

점점 힘도 빠지시고 보고 싶지 않지만 노인의 모습을 닮아가는 아빠를 보니 이젠 내가 기댈게 아니라 내가 보호자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싶어 아빠를 대할 때도 상냥해지게 되었다.

결혼 전엔 친구처럼 말하던 나였지만 이젠 순한 존댓말도 절로 나오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 “네. 그럴게요”

“네 알겠어요” 하며 제법 순종적인 자녀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나의 든든한 언덕인 부모님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 쓸쓸해진다.


며칠 전 아빠가 전화를 하셨다.

“너 자동차 종합검사받을 때 됐지? 그거 날짜 확인 하고 미리 예약해라”

평소 같으면 ” 네에 그럴게요 “ 하고 아빠는 바로 “알았다” 하며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 힘없는 아빠의 노인 목소리가 갑자기 서글퍼서 괜히 다르게 나간다.

“몰라 아빠가 해에~! “

“어? 흐흐흐흐 네가 해봐라 니도 할 줄 알아야지 “ 하며 좋아하신다.


난 잠시 사춘기 딸이 되고

아빠는 든든한 가장 시절의 젊은 아빠가 된 순간 '아직도 이 애에겐 내가 필요해. 천천히 가야겠다 '생각이 든 순간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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