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운 대로 못 큰 자식

어려운 거 아니었잖아

by 헤리나




곧 대학 졸업인 내가 세 살 어린 남자친구가 생기자 아빠는 걱정하셨지만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연애의 끝이 결혼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귀어야 한다며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 고작 스무 살이던 남자친구는 기특하게도 그러겠다고 했고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빠는 ‘부모님 뭐 하시노‘ ’부모님 연세 어떻게 되시노‘’형제는 어떻게 되노‘ 물으시고 그 뒤로 웃을 수 있는 이야기 몇 가지 하며 식사자리를 끝내셨다.

집에 돌아온 아빠의 소감은

“아는 귀엽데? 근데 어린 남자랑 결혼은 어렵지 않겠나. 지금이야 좋지만 나이 들면 가 친구 부인들은 어린데 니만 늙었다고 싫다카믄 우짤래?”

그리곤 진지하게 덧붙이셨다.

“니보다 어리다꼬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야! 너!‘ ’니가 그랬나 안 그랬나’ 하지 말고 인격체로 대해라 끝”

그렇게 인격체로 대해주고 예쁘게 사귀다가

울고불고하다 헤어졌다.


한참 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기가 기저귀 차고 침 좔좔 흘리는 작은 생명체였을 때도 아빠는 “얼라라꼬 함부로 하지 말고 인격체로 대해래이”


말씀처럼 아빠도 나를 평생 한 인격체로 대해주셨다. 언성 높인 적 없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댈 때도 “ 그래? 니는 그래 생각하나 “ 가 다였다.


돌아봐도 감사한 마음인데

나는 아빠께 못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 장면인데 꽤 자주 불쑥 나온다.


은퇴 후 시골을 오가며 주말농장을 하시던 부모님은 가끔 차 없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짧게 다녀오시기도 했다. “아빠 짐 많으면 연락하세요 제가 역으로 모시러 갈게요”

“아이다. 카트에 실릴 만큼만 가올끼다. 엘리베이터 잘 돼 있는데 뭐”

“느그 아~나 잘 봐라 “

매 번 반복된 대화다.

그러다 딱 한 번 서울역으로 마중 나올 수 있냐고 전화가 와서 그러기로 약속을 하였다. 지하철은 끊길 시간이고 역에서 가까워 택시 타기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일찌감치 도착하여 주차비를 아끼려고 역과 연결된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고 무료 주차권을 확보하였다. 장본 물건을 다 싣고 나니 부모님이 열차에서 내렸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쉽다는 듯 우리에게 오는 길을 설명하였다


“아빠! 롯데 마트 연결된 주차장으로 오세요”


부모님은 카트를 끌고 롯데마트 주차장을 찾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하시며 중간중간 전화하셨다.


못 찾겠다고


“주변에 물어봐요 롯데 마트 연결 된 데 어디냐고요”

말만 반복하며 전화가 올 때마다 신경질을 높였다.

지금 생각해도 나쁜 자식


몇 번의 반복 후 지친 아빠는 전화하셔서 “ 느그 그냥 집에 가라 우리 알아서 갈게 “

나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왜요! 그럼 그냥 밖으로 나오셔서 택시 승강장 지나자마자 길가에 계세요 차 빼서 나갈게요 “

마지못해 그러마 하셨고 우리는 택시 승강장을 지나 차가 정차할 수 있는 대로변 인도 쪽으로 향하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받은 부모님의 모습과 주변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나쁜 자식


지친 부모님과 농산물이 실린 카트, 그리고 몇 발 옆에는 술에 취해 머리를 도로 쪽으로 드리운 채 똑바로 누워 자고 있는 노숙자들 두어 명이 있었다.


여름밤 자유롭게 자고 있는 노숙자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부모님의 표정은 내가 나쁜 자식임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원망 없이 그저 지친 평온한 얼굴

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서울역을 갈 때면 당연히 따라 떠오르는 장면이다.


귀여워해주고 보호해 주고 인격체로 대해줬더니

그냥 버릇없이 커버린 딸이었다.


지금이라도 사죄드릴까

실은 잊으셨길 하는 마음에 덮어두고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겠지.


부모님은 “내가 너를 그렇게 안 가르쳤는데 왜 그러니”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변명하고 싶고 없던 일로 하고 싶으니 끝까지 내 생각만 하는 것이지.


으유 못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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