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군것만 기억나서 더 슬퍼 나는 못된 동생이었는데
기억
내가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아픔이 있다.
남매로 자란 나는 스물 넷이던 여름 두 살 위 오빠를 잃었다.
유학 중이던 오빠는 현지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이 건너가셨고 며칠 후 유해를 안고 귀국하셨다
내가 오빠에게 쓴 편지가 부모님이 그곳에 계실 때 도착해 유품과 함께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다 그걸 본 엄마는 그대로 울음이 터졌다. “편지 빨리 써주지 그랬나….. “ 하고는 한참을 우셨다.
일은 갑자기 일어났고 모두 처음이지만 드라마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화받고, 부모님이 건너가시고, 수습하고, 귀국하고, 장례 하고,
셋만 남았다.
본인의 미래를 계획하고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던 오빠였다.
나는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지내면 되는 위치였다.
갑자기 성실한 오빠가 없어지니 자식 중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내가 갔어야 하는 건가 생각도 했다. 나는 결코 죽고 싶지 않지만 오빠 대신 내가 없는 게 나을 뻔했다고 속으로 부모님께 미안한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간간히 웅웅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셨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셨다.
나는 가끔 ‘이렇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는 거 맞아?’ 생각했다.
아빠가 표현했던 슬픔은
“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는 말 있잖아? 정말 느그 오빠 누워있는데 만져보이 안 차갑고 말랑하더라 ”하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그땐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맘으로 들었는데
지날수록 슬픈 말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픔이 더 커지고 선명해진다. 내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청년이 되어갈수록 엄마아빠는 그런 아들을 잃고 어떻게 사셨나 가슴이 훅 꺼진다.
몇 년 전 별일 아닌 듯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때 우리가 전화받고 급하게 캐나다에 가느라 너를 신경을 못 쓰고 갔었어. 친구들이 와서 같이 자준다 하니 됐다했고 가서 화장하고 장례하고 며칠 만에 와서 너를 보니 ‘쟈도 죽겠다’싶어 정신이 퍼뜩 드는 거라.”
나는 그때 마른 몸이었는데 부모님이 집을 비운 며칠 동안 아마 못 먹었었던 것 같다.
그새 바싹 마른 딸이 혼자 남아 -친구들이 곁에서 함께 있어 주었다- 휑해진 얼굴을 보자 정신이 드셨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오빠의 지인들이 집으로 조문을 와서 내가 빈집의 상주노릇을 했던 며칠이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원래부터 셋이었던 가족처럼
행복하게 지냈다.
명랑하고 제멋대로이던 나는 그대로 명랑하고 제멋대로였다.
조금은 달라졌다
페소공포증이 생겼고
나는 부모보다 먼저 죽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아프거나 사고가 날까 불안해한다.
죽을병에 걸리면 끝까지 알리지 말아야지 해외 파견 가게 됐다고 하고 어떻게든 속여야지 생각도 했다.
우리나라 휴가 피크주간이 기일인데 나는 그날은 휴가를 안 간다. 혹시 사고 나서 그날 내가 세상을 뜨면 우리 부모님 어떡하나 싶어 조심한다.
조용히 지나가면 덜 아픈데 갑자기 남에게 오빠 이름을 들으면 아팠다. 기일에 내게 문자나 메일을 주던 오빠의 지인들에게 ‘기억해 주는 게 고맙지만 내게는 알려주지 마시라’ 그랬다.
지나고 보니 오빠한테 미안하다. 내가 아픈 게 뭐가 중요했나.
15년쯤 지났을 때 오빠의 후배 중 한 명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혹시 오빠 이름과 세례명을 그대로 아이에게 지어줘도 되겠냐고 했다.
내가 허락할 일은 아니다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해마다, 좀 지나서는 몇 년에 한 번 오빠 기일에 그 아이의 근황을 알려온다.
그 아이는 잘 자라 무병장수하길 빌게 된다.
이번 기일에 나는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았다.
이렇게 깊은 슬픔을 내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피하고 싶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미안해요. 시간은 한참 지났는데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점점 더 진하게 느껴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일 겪고도 나 잘 챙겨줘서 고마워요.
오늘 같은 날 가족이 같이 모여 기억하고 기도하고 서로 위로해야 하는데 내가 위로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침부터 ‘있다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 벌써 저녁이 되었어요.
누가 아는 척하는 것도 힘들고 없던 일처럼 지나가고 싶어서 피하게 돼요.
내가 언제쯤 힘주는 자식이 될까 그런 날이 올까 싶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미안해요. “
처음 알게 된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렇게 슬픈데 어떻게 한마디로 “남매였는데 한 명은 죽었어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혹시 나를 알아본다면 부디 모른 척해주길 미리 부탁하고 싶다.
세월이 얼마나 지나면 꺼낼 수 있을까.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제가 준비가 덜 돼서 그래요
숨기는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