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시부모님, 시누이와 여행을 갔다.
국내 1박 출장이 잡힌 시누이가 혼자 숙박하기 무섭다며 부모님도 함께 가자 하고 어머님이 "헤리나도 데려가자" 해서 넷이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이 계획을 부모님께 알리자 아빠가 의외로 반대하셨다.
"결혼했는데 신랑 두고 혼자 어데 가노, 집에 왔는데 컴컴하이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섭섭겠노?"
하셨다.
"하룬데 뭐 어때요, 다른데도 아니고 김서방 부모님이랑 누나랑 가는 건데 좋아하겠죠?" 하였다.
내가 여행 간 날 남편은 퇴근 후 잘하지 못하는 인터넷 고스톱 게임을 하다가 게임머니 다 잃고 튕겨져 나와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 있다 잠들었고 다음 날 일어나 출근하였다고 했다.
평소 술 약속도 종종 있는 사람이 그날은 하필 일찍 들어와 고독 코스프레 한 거냐며 미안함을 슬쩍 넘겼지만, 아빠의 말씀이 맞아 속으로 놀랐었다.
남편 늦게 오는 날엔 친정에서 저녁 먹고 눌러있으면 '남편 오기 전에 들어가 있으라'며 일찌감치 쫓으셔서 '부모님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 하며 일찍 집으로 돌아와 빈집을 지켰다.
아이 둘을 낳고 둘째가 두 돌 즈음 남편이 내게 휴가를 주었다.
부모님께 또 자랑을 했다.
'이렇게 아내 위하는 남자랑 살고 있으니 기뻐하시겠지'하는 기대로 말씀드렸는데 아빠가 또 탐탁지 않아 하셨다.
"아-캉 신랑 놔두고 혼자 무슨 여행이고 그래 가믄 뭐 재밌노?" 라고 하셔서 조금 섭섭했지만 '부모님 세대는 그럴 수 있어 “ 생각하고 조금 무거운 맘으로 친구와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는 김서방한테 괜히 미안해서 애 봐줄 테니 좀 쉬라 하려고 가보니 웬걸 아기들 뽀로로 틀어주고 청소기 휙 돌리고 빨래도 밀린 것 없이 다 널어놓고 계란밥 만들어 먹이고 있더란다.
돌아온 내 귀에 "니보다 살림 훨끔 잘하더라!" 며 작게 일러주셨다.
낮에는 유모차 밀고 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창 카페에 자리 잡고 수프 떠 먹이고 빵 잘라 먹여서 동네에 '저 집 여자 여행 갔다'라고 소문도 다 났다.
이런 몇 번의 경험으로 '부모님은 결혼한 여자는 가정을 묵묵히 지켜야 한다는 조금은 구시대적인 여성상을 추구하시는구나'라고 믿게 되었다.
그 후 작은 결정에도 이를 떠올리며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이 다르시네요!
지난 주말 친정에서 부모님의 옛날 앨범을 보는데 젊은 시절 두 분이 여행 간 사진이 여러 장이다.
엄마 큰 수술 앞두고 추억 여행 다녀오신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뒤로도 방학이면 나를 시골 할머니댁에 보내고 두 분이 제주도도 가시고, 설악산도 가시고, 북한산에 가서 텐트도 치고 주무셨단다.
나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 떼놓고 여행은 안 된다'라고 그렇게 조언을 주셨던 두 분이 어린 나를 방학마다 할머니댁에 맡겨두고 두 번째 신혼을 보내셨다 생각하니 작은 배신감이 올라온다.
'아부지 내로남불 같은데 맞아요?"
날 밝으면 여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