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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Aug 17. 2022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17

22/06/22

지난주 회사 복직 이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몸도 마음도 다소 지친 상태였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는 하는데, 그게 또 나의 일이 되면 생각만큼 쉽고 의연하게만 버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어제는 도저히 그냥 잠들기 어려워 집에서 혼술을 했다. 아들을 재우고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굳이 계단으로 22층을 내려와 편의점에서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들고 22층을 다시 올라왔다.(참고로 우리 아파트는 30일 넘게 엘베 교체 공사 중이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풀 해방구가 필요했다는... 다행히 술 한잔하니 굳었던 몸과 마음이 다소 녹아내렸다. 힘들 때 먹는 알콜엔 이런 힘이 있다.


바닥을 지나서였을까. 오늘은 주변 환경이 어제보다 한결 나아졌다.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떄문에 그간 도움을 청하지 못했던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첫 출근하셨다. 앞으로 2주 동안 아내와 아기 곁에서 여러모로 도와주실 예정이다. 이모님의 첫 인상은 썩 좋았다. 야무진 손으로 이런저런 집안일을 후딱 해내셨고, 덕분에 아내도 편히 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늘상 내가 담당했던 아기 목욕도 맡아주셨다. 이모님의 활약으로, 나는 오랜만에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맛볼 수 있었다.


지긋지긋했던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도 오늘부로 마무리돼 정상 운행됐다. 한달넘게 하루 한 두번 22층을 오가며 몸무게가 2kg 넘게 빠졌다. 뜻하지 않은 다이어트 효과를 보긴 했지만, 그 흔한 택배나 배달 음식 주문도 큰 맘 먹고 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삶의 질은 급격히 악화됐다. 역시 사람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야 새삼 소중함을 느낀다. 엘리베이터 운행이 재개되자, 신이 난 나는 아내에게 외식(배달 음식)을 제안했다. 음식 맛 자체보다, 집에서 편히 앉아 받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100배는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사소한 것으로부터 행복 혹은 불행을 느낀다.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삶'이란 구조를 만든다. 숨쉴 틈 없이 빡빡했던 일상에 작은 구멍 몇 개가 생기면 호흡이 한층 자연스러워진다. 그런 상황에 감사할 줄 안다면, 이내 또 다른 삶의 여유가 찾아올지 모른다. 요즘 내 삶도 그렇다. 거창한 무언가를 좇기 보단,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며 감사하줄 아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다보면 기대 안했던 '선물' 같은 일이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요컨대, 엘리베이터 만세! 산후도우미 이모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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