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이제 겨우 생후 100일을 넘은 아들은 벌써부터 선천적 사회성을 발휘하며 나를 놀라고, 또 당황스럽게 만든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주변 반응과 기대에 맞춰 행동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우리 부부가 아는 한 아들은 '순둥이' 캐릭터는 아니다. 밥 때를 조금이라도 넘기면 세상이 떠나갈 듯 울고, 잠 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주기적인 보채기가 따른다. 그런데, 다른 가족이나 외부인과 함께 있을 때면 한없이 순한 얼굴로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곤 한다. '두 얼굴의 사나이'가 따로 없다. 요즘은 '살인미소'라는 개인기까지 장착해 천사같은 아이로 스스로의 캐릭터를 포장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내의 생일을 맞아 부모님, 누나네 식구와 한데 모였다. 이야기의 중심은 역시 아들이었다. 9살, 7살 조카들도 생후 100일 사촌 동생을 서로 보듬으며 사랑을 듬뿍 나눠줬다. 모임의 주인공이 자기란 걸 안 걸까. 평소 같았으면 여러 번 칭얼거렸을 시간이지만, 아들은 이사람 저사람이 사랑과 관심을 주자 환한 얼굴로 쉼없이 응대했다. 가족들은 '이렇게 순한데 도대체 엄마아빠는 육아가 왜 힘들다고, 아기가 자주 보챈다고 하느냐'며 반문한다. 네...? 아들의 연기에 가족들은 이렇게 속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가족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선 아들이 그 '본색'을 드러냈다. 그간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짜증이 폭발한다. 아내는 '우리 아들의 MBTI 성향이 나를 닮은 E(외향적)라서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닐까'라고 긍정 회로를 돌려 본다. 아무렴 그럴지도.. 어쨌건 외출 후 집에 돌아온 아들을 달래기란 참 어렵다.
다음 번 가족 모임 땐 아들의 일상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은 장면을 촬영해 가족들에게 공개라도 해야하지 싶다. 두 얼굴의 남자의 이면을 보여줄 일종의 'VAR'인 셈이다. 그렇게 라도 하면 평소 우리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 때, 어디선가 아들의 마음 속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하나요. 제 이미지는 지켜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