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_'단어 풀어주는 남자'를 시작한 이유
1년 전 쯤, '당신의 문해력'이란 제목의 EBS 다큐멘터리를 보며 놀란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선생님이 가제(假題)가 무슨 의미인지를 묻자 교실에선 '랍스터'란 대답이 튀어나왔다(랍스터는 한글로 바닷가재). 함께 TV를 보던 나와 아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낯뜨거운 장면은 중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서도 나왔다. babysitter, 즉 '보모(保姆)'라는 단어를 아느냐는 선생님 질문에 여러 학생이 모른다고 답했다. 낱말을 몰라 원활한 수업 진행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다시 강조하자면, 초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단순히 학교의 문제만도 아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포털 사이트마다 존재했던 실시간 검색어엔 이따금 생뚱맞은 단어가 순위권에 오른 적이 적지 않았다. 사흘을 '4일'로 착각하거나, '차주(次週)' '명일(明日)'이 무슨 말인지 몰라 애를 먹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도 있다.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신문이나 TV에서 나오는 말의 의미를 몰라 곤란했다’고 답한 시민은 2015년 5.6%에서 2020년 36.3%로 6배 넘게 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직간접적으로 밥벌이 삼는 직업인으로서,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느낌적인 느낌'에 따라 말하고 글을 썼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단어 풀어주는 남자'를 시작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단어는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의 사실상 기본 단위다. 시험을 치르거나 책을 볼 때, 보고서나 기사 혹은 SNS 글을 읽을 때도 단어의 연결을 통해 문장과 문단을 파악한다. 하지만 우린 낱말의 정확한 뜻을 얼마나 온전히 이해하며 쓰고 있을까.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담은 단어들은 차치하도록 하자. 대충은 알아도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거나, 감은 오는데 막상 의미를 물으면 답하기 곤란할 때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단어 풀어주는 남자'에선 주로 일상 속에서 자주 쓰는 한자어(漢字語)의 뜻 풀이를 간략하지만 최대한 정확히 정리할 예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명사의 약 80%가 한자어라고 한다. 한자의 의미만 제대로 알아도 많은 단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주제 넘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재'가 아니라, 나부터 먼저 배우고 공유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한 단어 한 단어가 모이고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온전히 나의 말과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