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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Aug 20. 2022

돌아온 탕아(湯兒)

#23

육아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연속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24시간 중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행위가 바로 목욕이다. 육아를 하기 전까진 아기가 '매일' 씻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 '짠'하고 아이를 씻긴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 아니였나. 그런데 바로 그 주인공이 나, '아빠'란 존재였던 것이다.


보통 목욕은 마지막 수유, 이른바 '막수'를 앞둔 저녁 8시를 전후해 거행된다. 목욕 후 나른해진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면 그대로 곯아떨어진다는, 수 차례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루틴이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씻겨주고 먹여줘서 재워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꽤 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나. 욕실에 들어가기 전, 옷을 벗는 행위조차 귀찮고 짜증날 때 말이다.


통상 아기의 얼굴과 머리를 먼저 씻긴 후, 몸통을 작은 '아기욕조'에 넣는 순서로 목욕이 진행된다. 아들은 머리감기를 특히 싫어한다. 샴푸 묻은 머리를 하고는 세상이 떠나갈 듯 울다가도,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진다. 그리곤 이내 세상 편한 얼굴로 물놀이를 즐긴다. 목욕을 좋아하는 손자를 두고 아버지는 '물을 좋아하면 커서 술을 좋아한다는데, 지 애비를 꼭 닮았나 보네'라고 껄껄 웃으셨다.


아기 목욕엔 큰 책임감따른다. 아내가 유일하게 나를 대신하지 못하는 육아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조리원에서 온 첫날부터 목욕은 내가 전담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기는 아빠와 함께 하는 목욕 시간을 꽤 즐기는 눈치다. 덕분에(?) 휴직 전 회사를 다닐 때도, 나는 적지 않은 '칼퇴 압박'을 느꼈다. 내가 없으면 아이가 꾀죄죄한 몰골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기에... 난 업무나 저녁 약속을 최대한 줄이고 오직 '씻기는 행위'를 위해 집으로 향했다.

 

내 어린 시절을 더듬어봐도, 아버지와 함께 하는 목욕은 꽤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물론 아직 아들은 생후 120일이 채 안됐지만..^^). 뚱땡이 바나나우유를 먹는 맛에 주말마다 신나게 아버지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고사리손으로 드넓은 등판을 밀어드리면,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로 답해주셨다.


목욕은 우리 부자(父子) 사이를 잇는 일상 속 특별한 '의식'이었다. 지금은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겨주지만, 언젠가는 어느새 훌쩍 큰 아이가 아빠 등을 밀어주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도 아들에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바나나우유를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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