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예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됐다. 주로 사소한 변화인데 아기가 없었다면 미처 몰랐을 것들이다.
일단 타인의, 타인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걷다 보면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먼저 말을 건네 오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손주가 있을 법한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손주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또래의 아이에게 눈길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한 번은 쇼핑몰에서 화장실에 간 아내를 기다리는데, 한 노부부가 다가왔다. 그러곤 아들이 탄 유모차의 가리개를 가리키며 "이건 어디서 샀어요? 쌍둥이 손주가 있는데, 하나 사주고 싶어서요."라고 물었다. 육아템 구매는 아내 전담 역할인데.. 내가 제대로 답을 못하고 주뼛한 사이, 다행히 아내가 구세주처럼 다가와 어르신들에게 구매 사이트를 친절히 설명했다. 그들은 활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유모차 가리개 하나가 일면식 없는 노부부와 젊은 부부를 이어준 셈이다.
밖에서 만나는 아기들을 보는 우리 부부의 관심도 커졌다. 마치 자석처럼 시선이 끌린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 아기를 볼 때면 '저 아가는 XX이와 비슷한 개월 수 같은데, 아기띠에 잘 있네' '우리 XX이는 언제 커서 저 아이처럼 아장아장 걸을까' 같은 얘기를 나눈다.
사람들의 작은 배려를 느낄 때도 있다. 안양천 산책을 하려면 신호등이 없는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아내와 나만 있을 땐 차들이 보행자를 양보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10m 정도의 건널목을 건너려고 길게는 2~3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유모차를 앞세운(?)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차 몇 대만 기다리면 먼저 길을 건너라고 손짓하는 운전자들이 나타난다. 난 가볍게 목을 숙이며 고마움을 표한다. 이 얼마나 훈훈한 세상인가.
솔직히 셋이 함께 하는 외출은 둘 보다 힘들 때가 많다. 챙겨야 할 준비물도 많고, 아이의 상태에 따라 돌발 상황도 늘 따른다. 유모차를 끄는 아빠에겐 작은 턱이 태산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건 이전에 못 느꼈던 즐거움을 안겨준다. 내게 세상을 새삼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