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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Aug 31. 2022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5

아내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기 위해 집을 비운 며칠간, 나는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 그간 아내와 양분했던 육아 활동 및 집안일은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젖먹이를 키우는 아빠의 하루 24시간은 곧 다섯 번의 수유로 재정의 됐다. 새벽 4~5시, 아이의 울음소리로 시작한 수유는 저녁 8~9시까지 계속된다. 1회 180ml. 일정한 수유 텀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기계'를 자처다. 아들을 먹이고 젖병을 닦고 소독하고 다시 분유를 채우는 일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 기저귀갈이와 빨래, 온갖 가사는 덤이다.


홀로 아이를 맡으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나는 이걸 '벼랑 끝 육아'라고 칭하고 싶다. 아이가 보채거나, 울거나, 배고프거나, 변을 보거나 어떤 순간이 와도 돌보고 책임지는 건 나다. 이 방대한 활동을 분담할 동지가 없다는 건 꽤나 힘겨운 일이다.


정신적 고독도 만만치 않다. 정서적으로 의지할 누군가가 없다 보니 하루에도 종종 넋이 빠져 있곤 한다. 새삼 이 힘겨운 육체적, 정신적 노동 활동을 수년 동안 오롯이 버텨낸 '선배' 부모들이 존경스러워진다.


그렇다고 이런 시간이 마냥 소모적인 건 아니다.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나는 아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됐다. 울고 보챌 때 달래는 법, 찌푸린 얼굴을 환 웃게 만드는 법, 젖병을 좀 더 편하게 물릴 수 있는 법 등등. 아들과 치열한 시간을 보내며 터득한 노하우들이다. 나의 노고를 알아서인지, 아이는 요 며칠 부쩍 나를 보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고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한 장면

"모성애는 선천적, 부성애는 후천적인 것 같애"

먼저 육아를 경험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엄마의 자식 사랑은 타고난 데 반해, 아빠의 그 마음은 시간을 갖고 서서히 쌓는 무언가라는 의미였다.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부자(父子) 관계는 으레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를 공유하며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내가 집을 떠난 기간, 나는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짧게나마 또렷이 경험했다. 아들이 앞으로 성장해 나갈 긴 시간 속에서 많은 순간을 함께 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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